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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8.05 16:27:00
  • 최종수정2025.08.05 16:27:00

박영록

한국교통대 중국어전공교수

키르기즈스탄은 1991년 8월에 구소련에서 독립한 뒤 두 번의 혁명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특정 정당이 과대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한 정당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의석수를 헌법으로 제한하였다. 따라서 권력이 분산되다 보니 집권세력은 친여 정당들을 합쳐서 범여권을 형성한다. 2020년 10월 4일 총선 당시 여당은 사회민주당이었는데, 범여권이 압승하여 전체 120석의 90%를 가져가버렸다. 그러자 분노한 시민들이 10월 5일, 시위에 나서 1명이 죽고 600여 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진다. 이에 10월 6일, 키르기즈스탄 선관위는 전반적인 선거 부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며 선거무효를 선언하였다. 당시 키르기즈스탄의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더 버티지 못하고 결국 10월 15일에 자진 사임하였다.

그런데 이 키르기즈스탄은 2015년 무렵에 한국의 선거 개표기인 미루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다. 그 무렵 부정선거 이슈가 있었던 콩고, 이라크 등이 모두 미루시스템을 썼다는 점에서 한국의 일각에서는 미루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어차피 확인하기 어려운 영역인데, 적어도 키르기즈스탄 10월의 총선은 미루시스템에 의한 부정은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개표 외에도 워낙 전방위적인 선거부정 행위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키르기즈스탄은 개표 완료까지 보통 며칠이 걸리는데, 미루 덕분에 바로 당일에 결과가 나오고 그래서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였다는 점에서 미루가 오히려 부정선거 처단에 기여 한 셈이다.

10월 당시 키르기즈스탄은 12월에 총선 재투표, 2021년 1월 대선으로 일정을 잡았으나, 중간에 의원 120석을 90석으로 줄이는 내용의 헌법 개정이 있어서, 1년 뒤인 2021년 11월에 총선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21년 11월 선거에서는 정말 부정선거로 보이는 장면이 연출 되었는데, 개표 과정에서 카운팅 서버가 갑자기 꺼져버린 것이다. 이에 여러 야당에서는 서버가 꺼진 사이 자신들의 득표율 25~30%가 사라진 것 같다고 항의하였다. 당시 선관위는 '단지 화면에 보여지는 송출과정의 문제이며 서버는 문제없다'라고 해명하였으나, 국제감시단(OSCE)에서도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사례를 보면 가령 미루를 이용하여 부정선거를 하려면 시스템을 끄는 것과 같은 무식한 과정이 필요하므로 현실성이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심리적으로는 0.1%라도 찜찜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원래 필리핀의 선관위에서도 미루시스템을 도입하려 했으나, 현재 시스템에 대한 불안 또는 불만으로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여전히 100% 수개표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차피 전자개표와 수개표를 병행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갈등만 키우는 것보다는 좀 느리더라도 수개표를 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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