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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어이, 젊은이. 나랑 얘기 좀 하지 않을려.

아, 저 말인가요

-그래, 여기 지금 자네 말고 누가 있나? 나는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먼 시공을 건너 이리로 왔거든.

제가 주로 인터뷰를 했는데 오늘은 거꾸로 인터뷰를 당하는 것 같네요.

-뭔 소리여? 그냥 내 말 좀 들어봐.

좀 전에 먼 시공을 건너셨다고 했는데 무슨 말씀인지요?

-내가 좀 오래 전에 살았었어. 춘추전국시대라고, 그 전국시대에 살았었지. 그때는 길도 험해서 이런데 오려면 몇 달 걸렸어.

그럼 올해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그건 모르지, 그냥 노자와 맹자 사이 시대라고 하더라고.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양주(楊朱)라고 해. 양자거(楊子居) 양생(楊生), 양자(楊子)라고도 해.

꼭 하고 싶다는 말씀은 어떤 건가요?

-풍문을 들으니 여기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기가 어려운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먹는 건 오래 전에 다 해결이 됐고, 잘 살기로도 아마 세계에서 열 번째 안팎 될 거예요.

-내가 잘못들었나, 젊은이들이 결혼도 잘 안하고, 애들도 잘 안낳는다고 하던데. 나라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그건, 경쟁이 너무 심해서 그래요. 좁은 땅에 사람들이 많거든요.

-사람들이 나보고 위아주의자(爲我主義者), 쾌락주의자(快樂主義者), 개인주의자(個人主義者), 이기주의자(利己主義者)라고들 했어. 한 마디로 저 좋으면 그만이고 제 생각만 한다는 말이지.

이름도 많고 무슨 주의자도 무척 많네요, 이유가 뭐예요?

-좋게 말하면 영향력이 컸고, 개성이 강했다는 거 아니겠나? 중요한 건 영향력이야. 백년 전 조상이 자네에게 준 영향력이 뭐겠어, 하지만 세종임금은 한글을 남겨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잖아?

무슨 영향을 주셨나요?

-내 말 중에 유명한 게 "내 정강이 털 한올을 뽑아 세계가 구제된다고 해도 나는 뽑지 않겠다"는 거야.

와아, 정말 이기적이네요. 저 같으면 죽는다면 고민을 할까, 머리를 밀라고 해도 밀 것 같은데요.

-자네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해도?

세계가 구제된다잖아요, 아프리카, 아니 한 나라만 구제된다고 해도 할 수 있어요.

-젊은이는 심각하게 단순하고 전혀 생각을 안 하네. 큰일은 큰일이네. 사기도 많이 당하겠구먼. 거의 무뇌야, 무뇌(無腦).

이타적 희생정신이 강한 거지요, 그리 좁은 속으로 어찌 남을 이해할까요· 자기 수준을 넘어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지요.

-정강이 털 하나나 머리털 밀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세상에 어디 있나· 세상 문제를 위해 희생한다는 이들이 항상 문제야. 제 몸이나 잘 간수하라고 해.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얼 하겠다는 거야.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자기가 무얼 하겠다는 이들, 나는 믿지 않아.

그래도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진 이들 때문에 세상이 따뜻하고 살만한 겁니다.

-중요한 건 자기 생명이고, 자신인 거야. 돈이나 물건이 아니라 중요한 건 생명이고, 그 중에서도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게지. 모든 이들이 자기만 잘 챙겨도 세상은 살만할 거야.

남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도 하고 좋은 뜻을 모으는 게 얼마나 중요한 데요?

-자기 일이나 잘 하고 남에게 피해만 입히지 않아도 충분해. 입만 열면 번드르르하고 속으로 자기 잇속만 챙기니 세상이 이 지경이지. 의술도 좋아지고 살만한 세상에 왜 그리 죽으려고 해. 좋은 세상 악착같이 즐겁게 살아야지.

처음 뵙는 노인장께 제가 심한 말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건 피장파장이지, 나는 젊은이 여러 번 봤을까? 서로 초면에 흥분한 게지. 나이 많은 내 잘못이 더 크다면 크지. 나도 미안했네.

아닙니다, 노인장.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모두 여름 건강하게 보내십시오. 양주(楊朱) 어른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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