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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8.04 15:37:49
  • 최종수정2025.08.04 19:30:22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조금은 오래된 얘기인데 청주 강내 모가울 박씨 선조 가운데 중종 때 간관(諫官)을 지낸 필재 박광우(篳齋 朴光佑.1495∼1545)에 관한 일화가 있다. 후손 중 청주 유지 한분이 위선 사업에 애를 쓰고 있었는데 하루는 필자에게 제보 전화가 왔다. 필재 선조 묘소를 이장하다 임진전쟁 이전의 각종 묘소 유물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목관(木棺)은 향나무로 만들었으며 관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직사각형 형태로, 안팎이 2중으로 되어 있었다. 내관은 길이 250.5cm, 폭 69.6cm이고, 외관은 길이 280cm, 폭 99.5cm나 되는 대형이었다.

그리고 부장품으로 청동방울 7개, 백자항아리 1점도 있었다. 백자항아리는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부장품 중 하나로, 목이 짧고 입구가 좁은 특징을 보이며 뚜껑에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꼭지가 달려 있다. 관요도자기를 굽던 광주 가마의 번조로 보였다. 임진전쟁 이전의 유물이므로 중요하게 평가 되었다.

원래의 묘소였던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오산리에서 청주시로 묘를 옮길 때 발견된 유물들이다. 그 후 묘소와 유물들은 충북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필재는 조선 중종 때 사림학파의 한 사람으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돌아가신 분이다. 중종 14년(1519)에 형 광좌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그해 기묘사화 때에는 상소를 올려 신진사류인 조광조 등을 옹호했다.

이때 필재는 유생들과 함께 성균관을 비우고 대궐 앞에 부복하여 조광조를 옹호하는 연좌 농성을 벌었다. 참가한 성균 유생은 200명이었다. '훌륭한 선비들이 옥에 갇혔으니 신 등이 홀로 편안히 있을 수 없다'고 하며 임금이 조처를 취하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임금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동역할을 한 필재는 다른 유생들과 함께 대궐문을 지키는 군사들과 충돌, 머리가 깨져 피가 낭자하기도 했다.

3일째 되는 날 왕은 농성한 유생들을 용서하고 상소에 비답(批答.임금이 대제학을 통해 내리는 답 글)을 보냈다. 그러나 사림파의 거두이며 개혁파인 조광조, 김정, 김식 등은 끝내 유배지에서 죽었다.

필재는 중종 20년(1525)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동국여지승람을 펴내는 일에도 참여했다. 명종 즉위년(1545)에는 사간 지제교에 올랐으나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선동역에 유배되고 곤장을 맞은 여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을사사화는 조선 명종 대왕대비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악행을 일삼던 권신 윤원형이 일으킨 사화이다. 윤원형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정적들을 모두 모함하여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다. 사화의 여파는 그 후 6년에 걸쳐 계속되었고, 갖가지 죄명으로 유배되거나 죽은 자의 수가 거의 100명에 달하였다.

필재가 윤원형 일당에게 공격 대상이 되었던 것은 바른 소리를 하는 간관 직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만한 권력에 굽히지 않고 간관으로 소임을 다해 권력의 횡포를 비판했다.

뒤에 율곡 이이의 상소로 필재는 관직이 회복되어 이조판서를 증직 받았으며 숙종 13년(1687) 화양동에 있던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이 묘표(墓表)를 지어 필재의 정신을 기렸다.

요즈음은 이런 올바른 소리를 내는 현대판 '간관'들이 없다. 집권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거수기로 정착 되고 정권 옹호 나팔수가 되었다.

언론은 권력이 정도(正道)를 가도록 비판하고 채찍질하는 옛 간관의 책무가 부여되어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데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정권에도 유익하지 않다. 청주 강내 모가울 출신으로 권력의 악행에 맞섰던 간관 박광우의 용기가 그리워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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