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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아욱이 땀 흘리는 날은 텃밭에도 물기가 그들먹했다. 무더위에 잠을 설치다가 창문이 훤해지면 아욱도 그제야 잠든 것처럼 게슴츠레하다. 미안하지만 왔으니 한 모숨 잡고 분지를 때마다 날파리가 법석이다. 무더위에 시달릴 때마다 모기가 앵앵거렸다. 엎친 데 덮쳤으나 그래서 가을이 넉넉하다.

집에 와서 된장국을 안쳤다. 한소끔 끓이다가 아욱을 넣고 올갱이 한 대접을 넣는다. 달래강에서 한 주전자 움켜 온 거다. 박박 씻은 뒤 물을 채워 놨더니 해감을 하느라고 일제히 혀를 빼물었다. 재빨리 삶아 건져 속을 꺼내고는 국에 넣은 것이다. 고추장까지 한 숟갈 풀면 발그름한 빛깔이 먹음직스럽다.

올갱이도 올갱이지만 너울너울 자란 아욱이야말로 충청도 최고의 국거리다. 보통 사립문 닫아걸고 먹는 가을 아욱이 최고라지만 오늘따라 탑탑하고 구수했던 맛이 가을 아욱죽 뺨친다. 여름내 땀 흘리며 자란 탓일까. 아욱국 먹을 즈음에는 나도 혈색이 좋아지곤 했기에. 땀이 나지 않아서 뽀송뽀송 체질이 그때부터 땀이 나고 입맛이 돈다.

주로 유럽과 아시아 등 따스한 곳에서 자란다. 껍질을 벗기고 미끈한 즙을 씻어내는 등 조리가 번거롭다. '아욱국 끓여서 삼 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못 들어간다'고 했다. 살이 찐다는 게 아니고 병약했던 사람이 보양식으로 먹으면 건강을 되찾게 된다는 뜻이다. 소화가 잘되고 노폐물을 씻어 주면서 오히려 다이어트 식품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도 아니다.

특별히 가을 아욱국은 사위만 준다. 대문 걸고 먹는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 정도일 줄이야. 며느리 몰래 먹는다고도 했다. 얄미운 며느리 통통해질까 봐 심술보다는 자기 건강 챙기려는 심산일 게다. 그만치 영양식이지만 나는 7월 아욱국을 대단시하고 있다. 무더위로 형성된 요 근래 아욱 맛은 독보적이었으니까.

봄에도 맛은 있다. 바람은 싱그럽고 봄볕에 자랐다. 다듬을 것도 없이 깨끗하다. 그냥 씻어 넣으면 향도 좋고 배틀하다. 삐루루 새라도 울면 텃밭인데도 숲속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염소 뿔도 녹는 오뉴월이다. 밭에만 들어가도 후끈후끈 열기에 벌레까지 극성이다. 해는 또 얼마나 긴지 넘어가야 잠도 잘 텐데 서산마루에서 늑장이다. 밤에도 더웠으니 대궁을 분지를 때마다 미끈미끈 땀범벅이다. 노폐물이 빠져나가면서 뛰어난 영양식품이 되었다.

우리도 4월 내기 아욱처럼 통통할 때가 있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철이 드는 것처럼 아욱도 푹푹 찌는 장마에 가뭄까지 치르면서 씨앗을 맺는다. 전성기는 그냥 오지 않는다. 인생 찬가는 역경과 시련을 견딘 자의 특권이다. 가을 아욱뿐 아닌 모든 채소와 곡식이 그렇게 씨앗을 달면서 농사가 이루어진다.

아욱만 해도 국거리로만 먹으면 무더위를 견딜 이유가 없다. 초여름까지 너울거리던 잎도 맛있지만, 씨앗으로 영글기 위해서는 한여름의 땡볕과 가뭄을 견뎌야 했다. 7월이면 대궁 째 뽑아서 말린 뒤 씨앗을 훑어 종이봉투에 보관했다. 사다가 뿌릴 수도 있지만, 유전학적으로도 본 밭에서 씨를 받아 파종하는 게 우수하다.

1차 꺾으면 소나기 참에 나오는 고사리순같이 연했다. 잎을 따내는 대로 계속 올라오기 때문에 더위가 주춤하는 처서까지는 국거리 걱정 없다. 통통 살쪄 있으면서도 맛이 부드럽다. 단백질과 지방 칼슘 등이 많아서 소화도 잘된다. 여름이면 배탈이 잦은 내가 그래서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음식도 성품이라 하니까. 가을만치는 아니어도 무더위에 고유의 맛을 내면서 품계가 상승되는 여름 아욱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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