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1.7℃
  • 맑음서울 17.8℃
  • 맑음충주 16.5℃
  • 맑음서산 17.3℃
  • 맑음청주 17.5℃
  • 맑음대전 18.1℃
  • 구름많음추풍령 16.1℃
  • 구름많음대구 15.0℃
  • 구름조금울산 20.1℃
  • 구름많음광주 17.1℃
  • 구름조금부산 21.0℃
  • 구름많음고창 17.9℃
  • 맑음홍성(예) 18.5℃
  • 맑음제주 20.8℃
  • 맑음고산 21.0℃
  • 맑음강화 15.3℃
  • 맑음제천 15.4℃
  • 구름조금보은 16.1℃
  • 맑음천안 17.3℃
  • 맑음보령 18.3℃
  • 맑음부여 17.1℃
  • 구름조금금산 18.9℃
  • 맑음강진군 19.9℃
  • 구름많음경주시 19.0℃
  • 맑음거제 17.8℃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화단의 신사 이대원 화백

  • 웹출고시간2025.07.24 14:24:07
  • 최종수정2025.07.24 14:24:07
클릭하면 확대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대원 작품

ⓒ 이동우 제공
요즘은 미술학 박사학위가 있어도 대학 시간강사 한자리를 구하기 힘든 시대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고, 법대를 나와 평범한 직장생활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미술과 교수가 되고 미술대학장, 대학교 총장까지 한 화가가 있다. 이렇게 특이한 이력을 가진 화가는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과 함께 한국적 구상회화의 명맥을 잇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대원(1921-2005)이다.

이대원은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 선전(鮮展)에 입선할 정도로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일본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효자였던 이대원은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일반회사에서 근무한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그림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그의 작업실은 고향 과수원에 있었다. 1만 5천 평의 과수원은 선친이 그가 대학에 들어간 기념으로 산 것이라 하니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1957년 동화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 정도로 붓을 놓지 않고 있다가, 46세에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발탁된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으면 아마추어라고 무시하는 화단 분위기에서 그의 예술적 재능을 대학에서 인정한 것이다. 홍익대학교가 종합대학이 되면서 초대 미술대학장을 지냈고, 우리나라 미술과 교수로는 최초로 총장(1980~1982년)직을 수행하면서, 홍대를 미술 명문대학으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퇴임 후에는 최고의 예술인만이 회원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예술원'의 회장이 될 정도로 관운과 재능을 타고난 작가였다. 이대원은 미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5개국어(영어,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를 구사할 정도로 최고의 엘리트였고, 처세에도 능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1936~2018)가 있다. 그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취미로 가야금을 가까이 하다가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가 된다. '침향무'와 같은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고 연주했다. 서양음악과의 교류 및 다양한 창조작업을 바탕으로 국악의 영역을 확대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볼 때 천재들은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 빛을 발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1959년 이대원은 당시 경영난으로 어려웠던 우리나라 상업화랑의 효시인 '반도화랑'을 직접 맡아 운영한다. 그는 박수근, 장욱진, 김기창, 장우성, 김환기, 유영국 등의 작품들을 반도화랑에서 전시해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반도화랑에 들어온 박명자(1943~)라는 직원이 있었는데, 그녀는 후에 '갤러리 현대'를 운영하며 미술계의 큰손이 된다. 박명자는 이대원 대표에 대해 "형편이 어려운 젊은 작가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후배 작가들의 작품을 일부러 많이 사실 정도로 인품이 좋으셨고, 내가 알고 있던 화가들 중 가장 멋쟁이"라고 회고했다.

이대원의 작품세계는 점을 반복해 칠하는 특유한 기법으로 언뜻 보면 서양의 점묘법 같다. 하지만 생동감 있는 빠른 필치는 수묵화 기법에 가까워 그는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살려낸 서양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청전 이상범(1897~1972)은 밝고 화려한 색의 빗방울들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빛의 입자처럼 눈부신 환영을 만들어 내는 이대원의 그림을 '서양 물감으로 그린 동양화'라고 평했다. 고고학자인 삼불 김원룡(1922~1993)은 '인생의 행복감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땅에서 솟아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고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소재는 과수원, 산, 들, 연못 등 친숙한 풍경이었고, 이 소재를 통해 한국적인 멋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동시에 인간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풍요로운 이상향을 그리고자 했다. 추상미술이 화단을 휩쓸었던 50~60년대에 그는 자신만의 화법으로 자연을 그리며 구상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필자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미술실에 있는 화집에서 이대원의 그림을 처음 접했다. 화려한 색채로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밝은 그림이 맘에 들었다. 인물사진을 보니,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배우 안소니 퀸을 닮았다고 느꼈다. 지금 보니 신현준 배우하고도 비슷한 듯 하다.

미술사를 보면 사회에 부적응하고 불우하게 살다간 화가들이 있는데 고흐, 이중섭, 박길웅, 귄진규 등이 생각난다. 이에 비해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신은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맘껏 펼치면서 인생을 즐기다 간 작가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이가 피카소와 이대원일 것이다.

그와 절친했던 삼불은 "이대원 화백처럼 세상 편하게 산 사람도 없지"라는 농담하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전업작가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이대원 정도는 아니지만 빵 걱정 안 하고 작품활동하고 있는 필자도 복을 많이 받은 작가 중 한 명이라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좋은 작품 많이 만들라고 하늘이 주신 것이라 감사하게 여기며 오늘도 작품과 씨름하면서 작업실을 지키고 있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