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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7.16 16:12:53
  • 최종수정2025.07.16 16:12:53

박주영

시인·수필가

우리부부는 한때 도심에서 꾸었던 헛된 꿈들을 내려놓고, 시골 마을에서 거친 돌밭 길을 꽃길로 생각하며 오늘도 가난한 꿈을 키운다.

어느 날 일곱살배기 손녀가 파란 하늘색 닮은 눈빛으로 내 가슴에 "와르르" 안긴다. 세상에서 가장 이쁜 목소리로 "할아버지 할머니~"

적막했던 우리집에 들리는 싱그런 그 목소리~ 손녀가 찾아오면 어느새 집안에 사랑이 출렁이고 즐거운 이야기가 방안에 가득 쌓인다.

"하이~고 이쁜새끼 어서 오그라"

손녀를 향한 그리움은 누구나 그렇듯, 지루한 우리부부의 일상을 녹여준다. 기다림으로 가득했던 우리부부 마음은 금방 방긋한 행복을 되찾고, 그저 바라볼 수있는 것만으로 어느새 봄눈 녹듯 녹는다.

손녀 딸 효정이가 묻는다.

"할아버지는 왜 힘들게 일만 하셔요?"

학교 숙제인 강낭콩 심기 를 위해 종이팩에 키운 새싹을 들고 와서 하는 말이다.

"효정아 식물이나 과일은 햇빛과 물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거름도 주고 풀도 뽑아줘야 하는거야, 밭에서 일을 해서 까매진거란다. 니가 제일 좋아하는 복숭아도 햇빛을 쬐고 비를 맞아야 잘 자라는거야"

"아~그렇구나 저도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웠어요. 할아버지 저는 이담에 커서 농부가 되고 싶어요"

"하하하 그럼 그래도 되지 우리 강낭콩 같이 심어볼까?"

"네"

손녀가 하루를 부산히 보낸 밤하늘 별이 총총하다. 새들의 날개짓 품같은 잠 속으로 빠져든 손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쁘게 기뻐하며 소리치는 모습이 들꽃처럼 내 가슴에 항상 머물길 그저 그것만 바라는 마음이다. 그 다음 날 헤어짐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손녀의 아쉬움을 안아주며 "사랑해" 귓속말로 속삭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해요"

옥처럼 귀하고 생생한 기억을 우리 부부 가슴에 남겨주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 곁에서 대전 집으로 돌아갔다.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희망의 웃음소리가 귓전에 울려퍼진다.

문득 지난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옆 마을 농장에 열린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를 바라보면서 농장 주인의 꿈을 키웠다. 복숭아 값으로 현금대신 겉보리 1말과 바꿔오시던 어머니~ 그때 내 조막손에 안겨주던 그 복숭아가 얼마나 크고 꿀맛 같던지 세상에 이런 맛을 나무가 해내다니… 어린 내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때부터 유별난 나무사랑이 시작 되었던 거 같다.

"어무이~ 난 어른이 되믄 복숭아 농장 주인이 되고 시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3년 전 일이다. 우리 집에 찾아온 손녀딸 효정이가 겨우 말을 시작할 때쯤이다.

"할머니 세상에서 난 복숭아가 제일 맛있어요."

라고 귓속말로 속삭여주었다.

"그래 효정아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맛난 복숭아를 키워서 따줄게~"

그렇게 약속한 뒤, 우리부부의 정성스런 손길로 키운 복숭아를 처음 손녀에게 안겨주던 날, 내 어린 시절 꿈이 이뤄졌다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땀 흘린만큼 단 열매를 선물해 준다는 참된 농사의 이치 앞에서 큰 보람을 찾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내 남편이다. 정직하게 일하고도 착한 사람들이 밀려나는 도심의 삭막한 구조속에서, 정년의 꿈을 채우고도 청신한 삶의 출구를 찾아 시골 마을에 거처를 옮기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그는 서울 토박이에다가 평생을 대기업에 몸 담아 일하느라 밤 낮 없이 시력이 나빠지는 줄도 모르고 회사와 가정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우리부부가 처음 도심에서 내려와 낯설던 산비탈에서 산노루 발자욱 세어가며 태고적 고요를 즐겼다. 또한, 텃밭에서 이슬을 머금고 있는 토란잎이 물방울을 '또르르' 굴리고 그 옆으로 금낭화 꽃이 연분홍색으로 너울거리면, 공기와 바람의 부드러운 감촉을 즐기며 웃음 번진 얼굴로 흙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는다. 마음 꼭꼭 다지며 지고 피는 꽃이파리 세어보고 봄길에서 맺은 서약처럼 변함없는 꽃나무 사랑을 되새겼다.

오래전부터 귀촌을 마음속에 간직한 아내의 오랜 꿈을 지켜주려 가당치도 않은 시골생활을 약속해버린 뒤, 겁없이 저지른 내 결정에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며 잔주름 아래 수많은 걱정을 숨겨두고 열심히 땀방울을 흘린다.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 여명을 박차고 일어나 손녀가 심어 놓고 간 강낭콩이 잘 자랐다면서 정성껏 물을 주고 자라는 과정을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또한 고추밭에 겉자란 순을 쪼그리고 앉아 따내어 줄로 일일이 묶어주고 바람이 부는날엔 가지가 꺾일새라 노심초사 밤잠을 설친다.

어느 날 이었다. 두엄 냄새 풍기는 밭길을 따라 걸으며 노심초사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농사 일이 참 힘들지?"

그랬더니 하는 말은 "힘들지 않는 일이 어디있겠어? 그러나 회사 생활은 스트레스 때문에 어려웠지만 여긴 정신이 홀가분해서 좋아요. 술을 마셔도 공기가 맑아서인지 금방 깨어나고 그뿐이야? 시력이 좋아져 뿔테 안경도 벗어버렸잖아, 염색하지 않아도 괜찮고 넥타이 맨 도심의 신사보다 흰머리에 작업복이 얼마나 편한데…."라며 힘든 기색 없이 웃는다.

시댁 조카 결혼식 날이었다. 친지들이 한마디씩 건넨다.

"시골 물이 더 좋은가봐? 그전보다 건강해 뵈는구만…"

"전 체질이 농삿꾼인가봐요~ 농사일이 참 재미있어유~ 다시 태어나도 시골에서 살겁니다. 하하하 힘들어도 재미있어요"하며 껄껄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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