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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요즘 한낮의 무더위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래도 늦은 저녁이면 제법 바람이 불어 냉방기를 가동하지 않고도 잠들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창을 열어두니 새벽이면 하루를 깨우는 소리 들이 집안으로 흘러든다. 고요한 가운데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 엘리베이터 열리고 닫히는 소리 들이 천천히 잦아지고 금세 날은 밝아온다.

새벽, 희붐하게 밝아오는 빛 속에서 정적을 깨는 소리 들을 품고 천천히 사물들이 존재를 드러내는 그 시간이 참 좋다. 가끔 아침 노을빛이 비스듬히 도시를 덮기 시작하고,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오는 그 경계 없는 시간에 흐릿한 산 능선 뒤로 반쯤 넘어가는 중인 새벽달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세상이 신비롭기만 하다. 사실 우주의 시간은 경계 없이 서로 스며들고 뒤섞이며 흘러가는데 삶이 유한한 나 자신이 그 경계를 규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밝음이 있기에 어둠을 느낄 수 있고 둘 사이에 혼재도 느낄 수 있다. 대비되는 세계 같지만 함께 있어야 의식할 수 있는 세계니 결국 밤과 낮은 통합된 하나인 셈이다.

구분할 수 없는 경계인 새벽과 어스름 내리는 저녁을 좋아하는 내 안에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배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침이 오면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해야만 하는 일들을 줄 세우느라 머리가 복잡해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그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다 오후 6시가 되면 매듭짓지 못한 일이 있더라고 하루가 끝났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긴다. 라디오에서 다소 멜랑꼴리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시간, 낮이 끝나고 밤으로 가기 전 저녁노을이곱게 물드는 그 무경계한 시간이 되면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모든 것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길을 걷다 발견한 새 깃털 하나도 예쁘고 누가 넘어뜨리고 간 공용자전거도 불평 없이 세워두는 너그러운 내가 된다.

켄 윌버는 『무경계』에서 파도를 예로 들며 파도의 마루와 골이라는 최고점과 최저점이라는 대극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골 없는 마루가 없듯이 밤이 없으면 낮도 없는 것이므로 궁극적인 실재는 대극이 통일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경계선을 만들었고 경계선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분류하고 구분 짓고 도식화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 삶은 작은 것부터 중대한 일까지 사소한 선택부터 큰 결단까지 모두 경계를 설정하는 과정이 되었으며 그 경계들이 갈등을 만들고 우리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본다.

켄 윌버의 사상은 더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어 모두 이해할 수 없지만 꽤 공감이 가는 사상이다. 무엇이든 구분 지어 갈등을 키우는 일들이 다반사인 요즘 문득 새벽이라는 무경계의 시간에서 켄윌버를 떠올려 본다. 내 마음에는 어떤 경계들이 자리하여 욕망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무더운 여름 도를 닦듯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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