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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존재 그림자 속을 오래도록 걸어 왔다. 길 끝자락, 문득 마주한 것은 놀랍게도 '없음'이었다. 그것은 결핍도, 공허도 아닌, 모든 이름과 형상을 벗은 자리였다. 그저 텅 빈, 그러나 완전히 열린 '없음'.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유의양은 『북관노정록』에서 "몸이 나기 전과 죽음 이후를 없음으로 보라"했다. 이 말은 존재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인연과 조건에 의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파동이기 때문이다.

불교 『중론』에서 "인연으로 생긴 모든 것은 본래 실체가 없다"고 했듯, 존재를 실체로 고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시작에 불과하다. 존재는 흐름이고, 고요한 움직임 속에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파문이다. 이러한 사유는 '나'에 대한 인식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우리는 흔히 주체인 '나'를 당연한 전제로 삼지만, 그 전제가 곧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을 낳는다.

'무아'란 단지 자아를 부정하는 명제가 아니라,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꿰뚫어 보는 투명한 통찰이다. '나'는 인식 출발점이 아니라 관계와 인연이라는 조건 속에서 찰나적으로 형성된 결과다. 의식조차도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무수한 인연과 관계에 의한 교차점에서 잠시 드러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선불교 수행 법문은 "죽기 전에 죽으라"고 말한다. 죽음을 두려운 대상이 아닌, 깨달음에 대한 도구로 삼으라는 뜻이다. 죽음은 단지 소멸된 육신이 아니라, '본래 없음이라는 존재'가 직접 접하는 결정적 원인이다. 그것은 시간 경계가 아니라 언어 이전 자리로 되돌아가는 귀소로 종말이 아니라 근원으로 회귀이다.

불교 연기는 이 회귀 원리를 가장 쉽게 설명한다. 연기란 모든 존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조건 지어져 있다고 본다. 여기서 '없음'은 단순한 무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여는 자리다. 물리학에서 진공을 텅 빈 것이 아닌, 무수한 양자 흔들림이 '없음' 속에 '있음'으로 존재한다고 이해한다. '없음'은 출발이자 귀환이며, 비어 있음이 곧 충만함이 된다. 노자는 "도가도 비상도"라 했고, 선불교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 속에서 언어를 초월하려 한다. 진리는 침묵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침묵조차도 놓아버리는 자리에서 드러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 했지만, 선은 그 침묵조차 일시적인 방편이라 말한다. 깨달음은 언어 너머에서 드러난다. '앉아 있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없음'이라는 순간이 된다. '없음'은 모든 이름이 지워진 자리, 모든 개념이 붕괴된 지평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선은 이 때문에 '무위' 수행을 강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역설, 존재를 붙잡지 않음으로 존재 본래 빛을 마주하는 길. 이렇게 볼 때, 죽음은 꿈에서 깨어남이 된다. 삶은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일이며, 죽음은 그 겹겹 꿈을 해체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마지막에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자리, 이 숨결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선은 우리가 매 순간 '없음'에서 태어나고 '없음'으로 사라지는 존재임을 자각하라고 말한다. 찰나 순간들이 가장 위대한 현현하는 진실이다. '없음에서 없음으로'라는 말은 단순히 순환하는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존재함에 대한 축제다. 깨어 있으라. 앉아 있으라. 숨 쉬는 그 자리에 모든 것이 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없음'이라는 자리가, 가장 풍요로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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