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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돌절구가 보인다. 확에는 잡풀이 덮이고 능소화까지 얽혔다. 뿌리를 내려도 수십 발은 뻗어갔을 세월이지만 따스한 정취가 묻어난다. 왜일까.

얼금얼금한 틈새로 곰팡이가 끼고 벌레가 바글바글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침묵을 지켰을까. 뚜껑이라도 해 덮을 걸 공연히 비를 맞히고는 저 지경이 되었나 싶어 착잡하다.

어머니는 무던히도 돌절구를 아끼셨다. 25년 전 살림을 날 때 어머님이 내주셨던 물건이다. 6년을 과수원에 사는 동안, 어쩌다 오시면 시집간 딸이나 되듯 들여다보시곤 했다. 하지만 나는 투박하고 펑퍼짐한 게 싫었다. 어떻게 써야 되는지 방법도 모르고 끝내는 어머니가 오셔야만 관심을 받는 도구가 되었다.

봄이면 어머니는 장을 담그기 위해 오셨다. 그 때 박지기 장 메주를 찧었던 것이다. 지칭개가 나올 때, 쿡쿡 찧어서 쓴 물을 우려낸 뒤 콩가루를 묻혀 끓이면 쑥국보다 좋았다. 절구는 싫어했지만 어머니의 된장국 맛에 반해서 어설픈 대로 자주 사용한 폭이다.

다음은 김장을 할 때다. 여느 때보다 마늘이 많이 들어가므로 절구에 찧어 양념을 버무리고 김치를 담갔다. 메주를 쑬 때도 요긴했다. 닷 말 가웃 콩을 삶으려면 이틀은 걸렸다. 그걸 죄다 절구에 찧었다. 도와 드린다고 소매를 걷어붙이지만 절굿공이도 힘에 부쳤다. 간신히 몇 번 찧어봐야 대여섯 번 만에 끝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별 말씀 없이 혼자 그 많은 것을 찧곤 하셨다. 서툴다고 꾸지람하기보다는 궂은 일은 당신이 직접 하신다. 가끔이기는 해도 어머니가 오시면 장독은 반들반들 윤이 나곤 했다. 그나마도 이사를 온 뒤 오랜 날 방치해 두면서 이끼가 끼는 등 숭한 몰골이 되었으니 민망할 밖에.

돌절구와 어머니는 비슷한 이미지였다. 내게로 넘어온 것은 25년 전이었으되 어머님이 물려받은 것은 더 오래 전이라면 60년 족히 되었다. 가끔 소설처럼 엮는 말씀에 의하면 보리도 절구에 빻아 먹었다. 보리밥 곱삶이 때는 물론 채 익지 않은 보릿대까지 찧어 먹었다니 보릿고개 사연까지 절구는 속속 꿰고 있었다. 끼니마다 보리를 찧어 안치기도 하는데, 그걸'께낀다'라고 하는 것도 직접 들은 얘기다. 절구질을 하다 보면 밖으로 몰리는 게 있고 그러모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어머님이 요즈음 병이 나셨다. 과수원에 살 때는 자주 닦기라도 했는데, 이사 오면서 이끼에 뒤덮인 절구마냥 살림을 놓은 지 20년 만에 노환이 든 것이다. 진지도 잘 잡숫고 그닐그닐 거동은 하시지만 외출은 힘들다.

가끔 이맥없이 천정을 보실 때는 많이 늙으셨구나 싶지만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할 때가 있다. 잘하지는 못해도 뜨신 진지만큼은 드리고 싶었다. 매사 콩 놔라 팥 놔라 하실 때도 그러려니 한다.

어쩌다 옛집에 가면 돌절구 혼자 지난 곡절을 말해 주듯 집안의 과거 대소사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엮어가시던 어머니. 시시콜콜 옛날 얘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지. 돌절구가 친근해진 이유라고나 할까.

어머니가 애지중지하실 때는 투박해서 싫었는데 돌절구가 말쑥하다면 해사하게 생긴 어머니가 자기 치장만 하는 격이고 가족을 위해 맛나게 지어먹이는 정성도 느끼지 못했다. 태산 같은 보릿고개에서 껄끄러운 낟알을 찧다 보면 뉘도 숱하게 들어갔다. 그나마 흉년에 어찌 이밥 조밥을 가리랴 했을 테고 절구가 그래서 더 임의롭다.

오늘 아침 이웃집에 가니 돌확에 민들레가 피었다. 돌절구보다 작은 게 화분대용인가 보다. 귀퉁이가 떨어져나가고 검버섯까지 끼었다. 오히려 고풍스러운데 빗물까지 방울방울 맺혔다. 확 주변의 질경이도 비를 맞고 푸르러졌다. 눈 감으면 쿵 하고 내리치는 절구소리가 봄 허공에 실려 가는 듯 해맑다. 세월의 물목을 돌아가다 찍은 한 컷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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