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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루틴으로 아침을 시작한 지 오래다. 새로운 하루를 여는 시간, 갓 내린 커피에서 맛보는 행복감이 작지 않다. 간혹 운이 좋은 날엔 커피 향이 가득한 거실에서 저만치 바라보이는 미호강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풍경을 마주할 때도 있다. 하얀 물안개가 고요히 피어오르는 정경에 커피 맛은 배가 된다. 따뜻한 커피 들인 여유로운 아침, 하루라는 그릇에 담긴 시간이 가지런해진다.

"전동 분쇄기를 사지…." 커피콩이 분쇄기에 걸리는 소리를 듣던 남편이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한다. 산미가 풍부한 커피를 좋아해서 약배전 원두를 사용하는 까닭에 수동분쇄기가 거친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충분히 볶은 강배전은 부드럽게 갈리는 반면, 덜 볶은 커피콩은 손에 힘을 더 요한다.

전동 그라인더는 버튼 터치 한 번에 부드럽게 원두를 갈아내지만, 맛을 더해 주는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다. 꼭 필요하진 않아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요소를 놓치는 듯한….

유행에 둔감해서 새로운 것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편리한 핸드드립 도구로 바꾸지 않는 이유는 낡거나 익숙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향 탓도 있지만, 손길을 타고 퍼지는 짙은 향이 후각을 깨우는 순간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청정한 숲속의 풀 내음에 맑은 햇살의 숨결이 더해진 듯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힐 때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오래된 시계태엽을 감듯이 수동분쇄기를 돌릴 때면 잠시이지만 소풍 전날 밤과 같은 설렘이 동반된다. 드리퍼를 통과하는 커피 분말이 갈색 액체로 떨어지는 동안의 기다림이 행복하다. 작은 수고를 거쳐 얻게 되는 맛에 대한 기대감이 커피 맛을 더해 줄 것만 같다.

맛있는 커피 얘기를 할 때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20여 년 전 딸아이와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갔을 때였다. 예쁜 유리 공예품 가게가 즐비한 골목 투어 중에 한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도 마실 겸 화장실에 들를 목적이었다. 붐비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쌉싸름하고 고소한 풍미가 황홀한 맛이었다. 입안에 맴도는 달콤한 뒷맛의 여운이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만족한 마음으로 카페를 나오며 화장실을 위치를 물었다. 화장실이 없다는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인내심을 발휘하며 산마르코 광장으로 나왔다. 거기엔 유서 깊은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그곳에서 불과 150미터 떨어진 '이 피옴비' 감옥에 수감 중이던 카사노바가 탈옥한 후, 유유히 모닝커피를 마시고 갔다는 전설적인 카페에서 다시 커피를 마셨다.

아이와 대화 중에 커피 맛을 화제로 삼을 때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세계적인 문호들이 찾았다는 고풍스러운 카페의 커피 맛도 좋았지만,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작은 카페의 에스프레소 맛은 화장실이 없는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켰다고.

똑똑 떨어지던 갈색 방울이 소리를 멈췄다. 커피콩이 품고 있던 자연의 기운을 오롯이 내려놓았다는 신호다. 흰색 머그잔에 커피를 옮겨 담는다. 또다시 밀려오는 충만감을 만끽한다. 오늘이란 하루가 풀어놓은 선물을 음미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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