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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와 천주교 박해가 부른 한국 커피의 기원

  • 웹출고시간2025.07.03 16:21:32
  • 최종수정2025.07.03 16:21:32

박영순

'파란만장한 커피사' 저자

한국에서 커피의 시작은 매우 비밀스럽고 절실했다.

1860년(철종 12년) 4월 5일경, 백령도 인근 월내도 앞바다. 거센 북풍에 파도가 산처럼 일렁였다. 중국 산둥반도에서 출발한 상선에 몸을 숨겼던 랑드르, 조안노, 리델, 칼레 등 네 명의 신부는 급히 작은 황포돛배로 옮겨 탔다. 죽음의 위협이 사방을 에워싼 박해의 시대, 이들의 여정은 오직 신앙에 의지한 채 생명을 건 절체절명의 도전이었다.

서해의 짙은 물안개를 뚫고 돛배는 강화해협으로 들어섰다. 고려시대 사라센 상인들이 벽란도를 거쳐 예성강을 거슬러 올라갔던 바로 그 물길이었다. 커피 애호가들은 사라센 상인의 봇짐 속에도 커피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10세기경 테헤란의 의학자 라제스가 위장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처방한 이후, 커피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비싼 값에 거래됐다.

배가 예성강 하구를 지나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의 좁은 수로를 통해 한강 본류에 들어섰을 때, 신부들은 황급히 상례복으로 갈아입었다. 서구인의 큰 몸집은 헐렁한 상복 아래 숨겨지고, 벽안의 눈동자는 넓은 삿갓 그림자에 가려졌다. 상을 당한 이에게는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조선의 풍습이었으므로, 신부들은 포졸의 불심검문도 의심 없이 피해갈 수 있었다.

서강진이었는지 양화진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한강 포구에 내린 신부들은 어둑한 새벽길을 지나 남대문 밖 자암마을에 숨어 지내던 베르뇌 주교를 찾아갔다. 이들이 베르뇌 주교에게 건넨 60여 개의 짐꾸러미 사이에는 커피 원두 약 18㎏이 들어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기록에 따르면, 이것이 조선 땅에 처음 들어온 커피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 음용한 공간도 서울역 인근 자암마을로 추정된다.

파리외방전교회 홍콩지부에서 한양까지, 2000㎞에 달하는 목숨을 건 뱃길. 신부들이 조선 땅에 들여온 짐에는 성경과 교리서, 포도주, 자명종 같은 신앙의 도구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꾸러미 한 켠에는 뜻밖에도 커피가 숨어 있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박해와 전염병(콜레라), 두려움과 피로 속에서 커피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1859년 여름, 조선에 콜레라가 번지기 시작했다. 콜레라의 창궐과 더불어 천주교 박해가 격화되며, 방화와 약탈 등 사회 혼란이 심화됐다. 전염병으로 인해 1862년까지 4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베르뇌 주교는 1860년 3월 6일, 홍콩지부에 커피 40리브르(파운드)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고, 1년 1개월 하루 만에 인편을 통해 한양에 도착했다. 베르뇌 주교가 1866년 3월 7일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까지 한양으로 도착한 커피의 총량은 4차례에 걸쳐 136㎏에 달한다.

국가별 커피의 전래와 의미는 다양하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신성한 식물로, 아랍에서는 영적 보호의 상징으로, 프랑스에서는 사교의 매개로, 영국에서는 건강식품으로 각각 받아들여졌다. 조선에서는 콜레라와 박해라는 이중의 위기 속에서 커피가 신체적·정신적 회복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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