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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7.01 15:54:04
  • 최종수정2025.07.02 13:05:22

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상처는 늘 아프다. 수시로 만남을 해야 하는 대상에게 받은 상처는 더 깊고 쓰리다. 상처를 준 사람을 보는 순간 기억이 들춰지고 아픔이 폭풍처럼 밀려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은 다양한 기억이 축적된 거대한 집합체다. 그 속에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안 좋은 기억은 상처로 남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상처는 때로는 외부의 상처보다 더 깊고 오래 아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간과하며 산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내적 상처, 이를 트라우마라 한다. 그러나 그 상처에서 길어 올린 기억은 예술 작품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즉, 기억 속에서 치어처럼 바글거리는 상처를 들춰보고, 이를 작품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신을 붙들고 있는 아픈 순간들을 방생한다. 그 놓아줌의 행위는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순화시켜 트라우마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나는 상처의 심연에서 한 학기를 허우적거렸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소문이 기정사실로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깨진 유리 조각 위를 맨발로 걷는 느낌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상처를 준 사람과 마주했다. 집단적 오해의 대상이 되어버린 나는 어떤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억울함과 분노, 슬픔이 뒤섞인 감정이 내 안에서 출렁였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기억은 암기와 같은 반복 학습을 통해 기억되는 기계적인 기억인 '습관적 기억'과, 삶의 사건과 같이 일회적인 기억으로 반복될 수 없는 기억인 '순수 기억'이 있다. 기억이란 단지 과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로 이어져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적 관계이며, 미래의 사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내 순수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그리고 난 수시로 그것을 소환하여 소처럼 연하게 되새김하며 아픔을 방생할 것이다. 현재가 미래로 향할 때는 습관적 기억이 활성화되고, 현재가 과거로 향할 때는 순수 기억이 재현된다고 했던가. 시인들은 자신의 기억을 과거로 향하게 하여, 그곳에서의 순수 기억을 현재로 끌어와서 시를 쓰곤 한다. 그러한 시작(詩作)의 행위를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난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러나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후에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흐려질 뿐. 기억은 내 뇌 속에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돌풍처럼 불어올 것이다. 그 상처의 기억을 나를 성장시키는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오늘 기억의 파도를 따라 걷는다. 용서의 자리에 앉아 다시 한번 펜을 들고 끄적인다. '상처는 흘러가고, 나는 갯바위처럼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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