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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소월문학관 이사장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에 있었던 러일전쟁.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일본이었다. 따라서 전승국(戰勝國)이 된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자신들이 이 전쟁에서 소비한 비용과 물자 등을 요구했다. 으레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가 패한 나라에 대해 그동안 쓴 전쟁 비용과 물자 등을 요구하며 갖가지 이득을 취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때 러시아의 물자 등과 함께 러시아의 문학을 비롯한 문화도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흘러 들어간 러시아 문학은 많은 일본인에게 큰 감명을 안겨 주며 일본 문학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그 후 우리나라 문학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 전해졌던 러시아 문학은 다시 일제의 한반도 식민 통치와 함께 우리나라에 건너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수준 높은 러시아 문학을 맛보게 해주며 우리 문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런데 러일 전쟁에서 전승국이었던 일본의 문학이나 문화는 러시아에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전승국의 문화가 패전국에 전해지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오히려 패전국의 문화가 전승국에게 전해져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의 문학을 비롯한 러시아의 문화가 대단히 훌륭하면서도 풍부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문호가 많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문학 분야만 해도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 체호프, 고골리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군림해 온 러시아에 일본의 문학이 감히 뚫고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자신들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히 큰 러시아인들은 일본의 문학이나 문화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일본은 전쟁에서는 비록 러시아에 이겼지만 문화 전쟁에서는 진 셈이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무력 전쟁에서는 비록 일본에 패했지만 문화전쟁에서는 크게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패전에도 불구하고 자존심과 긍지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문학과 문화의 보이지 않는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며, 문학과 문화의 생명력은 길다. 또한 위대한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많은 나라는 비록 전쟁에서 패하더라도 정신까지는 지배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승리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영국이 셰익스피어라는 한 작가를 저 거대한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것도 바로 위대한 문학 속에 담겨진 그 엄청난 정신문화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문화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BTS, 블랙핑크 등 예전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빌보트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더구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은 국격까지 높여주었다. 10명 중 7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종이책도 읽지 않는다는 국민이, 지금 책을 구매하려 줄을 서고 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큰 이슈가 변주곡이 되어 위대한 문학가로 정신문화가 바로 세워진다면 진정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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