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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순

통일과 평화연구소장

6·25전쟁에 대한 성격 규명은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되어야 할 부문이다. 전쟁으로 남북 공히 입은 인적·물적 피해가 엄청났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전쟁의 상혼이 곳곳에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의 발발 원인, 침략주체, 전쟁범죄 행위 등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한다. 그래야 통일이 된 후, 구성원들이 화합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남북이 6·25전쟁에 대한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현실적으로는 6·25전쟁에 대한 남북의 공통분모를 찾기가 난감해 보인다.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이날을 미제반대투쟁의 날로 행사를 치르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조선민주여성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등 근로단체들에서 단체별로 미제국주의에 복수를 결의하는 모임을 가졌고, 25일에는 평양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기도 했다. 한마디로 6·25전쟁은 미제국주의가 일으켰고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집회의 목적이다.

6·25전쟁은 북한에 의한 남침이라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 구소련의 6·25관련 문서에 나타난 김일성과 스탈린의 밀약, 김일성의 중국인민지원군 개입요청 자료 등의 문건에다가 38선 부근 주민들의 전쟁초기 경험, 빨치산 포로들의 증언 등 까지 포함하면 수 없이 많다. 아직 우리 국내에서 6·25전쟁을 외세에 의한 대리전, 휴전선 인근의 남북긴장상태에서 촉발되었다는 1980년대 수정주의 사관에 경도된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들은 빈약하다.

북한이 6·25전쟁 72주년을 맞아 노동신문을 통해 내세운 전쟁에 대한 입장은 과거 주장과 다르지 않다. 전쟁 도발자는 미제국주의이고 미국에 의해 남한이 전쟁에 동원되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북한은 지속적으로 매체와 교육을 통해 주민들에게 미제와 남한이 전쟁의 주범임을 인식시켜왔다.

북한은 미제와 남한이 해방과 동시에 침략전쟁을 준비를 한 것으로 이번 25일자 노동신문에서도 주장하고 있다. 1945년 10월 당시 강원도 양양군 현복면 기사문이 경비초소를 습격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말까지 11건, 1946년 38선 일대 요소요소마다 대대적인 진지굴 파기, 초소습격, 주민납치 등 91건, 1947년 38선에 무력을 증강시키면서 454차례 무장도발. 1948년에는 480여명의 주민 살해 혹은 납치 등 932차례 도발행위, 1949년에는 2617차례 무장도발, 1950년 1월에서 6월까지 1147차례 도발을 소개하면서 침략의 도화선, 전쟁의 발화점을 모두 미제와 남한이 준비해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도발행위 숫자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당시 해방과 동시에 분단을 맞이한 상황에서 남북 모두 통일에 대한 기대감과 분단에 대한 긴장감이 맞물려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분쟁과 도발이 적지 않게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이 모든 도발이나 분쟁의 원인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으로 해석하면서 전쟁 도발자를 미제국주의와 그 사주를 받은 남한정부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에 북한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하게 나선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 전쟁을 '조선인민에 의한 정의의 조국전쟁' 혹은 이를 줄여서 '조국해방전쟁'으로 부른다. 조국해방전쟁이라는 명칭은 북한이 자신들의 전쟁참여를 정의롭게 만들면서 동시에 남침을 감추려는 기만적 용어다. 더구나 이 전쟁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미제국주의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자의적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6·25전쟁에 대한 남북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북한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기보다 자신들의 자의적 입장에서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남북이 통일로 향해 나가는 여정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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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