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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6명 목숨 앗아간 '민주지산'

천리행군 강행 '비극'…24년 전 4월 1일
목숨과 바꾼 불굴의 군인정신

  • 웹출고시간2022.03.31 20:24:33
  • 최종수정2022.04.03 12:58:06

1998년 4월 1일 혹한의 추위 속에서 국군 최정예 부대원인 5공수 특전사여단 대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동 민주지산의 겨울 모습.

[충북일보] 그날 길가엔 노란 개나리꽃이 청명한 봄 날씨를 맞이하고, 들판엔 어머니를 닮은 산수유꽃이 잔바람에 나풀거렸다. 국군 최정예 부대원인 5공수 특전사여단 대원들의 가슴에도 따뜻한 봄빛이 와닿았다. 김광석 대위(충남대 ROTC 30기)는 대원들에게 장비를 챙기라고 지시한 뒤 기상청 예보를 확인했다. 약간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행군하기 좋은 날이었다.

1998년 4월 1일 오후 1시께 천리행군 중인 특전사 대원들은 잠시 뒤 일어날 비극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영동군 용화면 민주지산(해발 1천249m)으로 전진했다. 오후 2시께 예상과 달리 많은 비가 내렸지만, 특전사 대원들에게 이 정도 기후는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었다. 산악 훈련에 능숙한 대원들은 빠르게 민주지산을 올랐다.

1998년 4월 1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숨진 국군 최정예 5공수 특전사여단 대원 6명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지난 31일 사고 현장 아래(물한리) 세워진 위령탑에서 열리고 있다. 특전사령부는 매년 3월 말게 이 위령제를 열고 있다.

ⓒ 김기준기자
그러나 1시간 정도 지난 오후 3시께 대원들이 6부 능선을 통과하면서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면서 비가 눈으로 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원들은 눈 내리는 산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며 행군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후 4시께 8부 능선을 지나자 강한 바람을 타고 내리는 폭설이 대원들의 시야를 가렸다.

김 대위는 순간 불안감을 느꼈다. 비에 흠뻑 젖은 대원들이 강풍을 동반한 폭설 속에서 저체온증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런 불안감은 50여 분이 지나서 현실로 나타났다. 일부 대원들이 탈진 증세를 보였다. 김 대위는 즉각 통신장비를 이용해 '훈련 일정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도 좋을지' 훈련을 지휘하던 23 특전대대장에게 문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명령은 '훈련강행'.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 무렵 민주지산의 체감온도는 영하 30도에 달했다. 바람은 시속 55km로 불었다. 어느새 30㎝ 이상 쌓인 눈 때문에 등산로마저 찾을 수 없었고, 전우들의 얼굴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밤으로 변했다. 이미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상태다. 김 대위는 부하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구조요청을 하려고 했으나, 급격히 떨어진 기온 때문에 무전기 배터리마저 작동하지 않아 더는 외부와 교신마저 할 수 없었다. 특전대는 임시 구호소를 설치하고 대원들을 대피시키고 있었지만, 밤이 되면서 눈보라와 추위는 더 거세졌다.

결국 오후 6시 30분께 혹한과 강풍을 견디지 못한 대원 1명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탈진상태서 전우들의 응급구호를 받던 이광암(34) 하사가 끝내 그가 지키고 싶었던 조국의 품속에서 눈을 감았다.

오후 7시 10분께부터 탈진 대원은 더 늘어났다. 1시간 뒤 상태가 괜찮은 일부 병력이 하산에 성공해 민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민간의 전화를 빌려 영동소방서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긴급 요청한 구조헬기는 악천후로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오후 9시10분께 현장에 도착한 119구조대원들도 강풍과 폭설을 뚫고 산으로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구조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특전사는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즉각 10~20명의 구조대를 편성해 민주지산에 투입하고 있었다.

1998년 4월 1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숨진 국군 최정예 5공수 특전사여단 대원 6명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안보공원엔 이들을 상징하는 베레모 6개를 넣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 김기준기자
이쯤 전해경(22) 하사와 오수남(19) 하사가 눈보라 치는 민주지산을 바라보며 잠든다. 이어 오후 9시35분께 지휘관으로서 정신력에 의지해 버텼던 김 대위마저 끝내 생사를 같이했던 부하 대원들의 뒤를 따르고, 한 시간 간격으로 한오환(22) 하사와 이수봉(24) 중사가 구호소에서 목숨을 잃는다.

결국 꽃다운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한 특전대원 6명이 눈보라 속에서 사망했다. 특전사 구조대는 이날 밤 숨진 대원 4명과 부상 대원들을 눈물을 흘리며 이송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2명의 시신을 찾았다.

이 일로 국방부는 사고의 지휘 책임을 물어 대대장을 보직 해임하고, 훈련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단장과 여단 정보참모를 징계했다. 이 사고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물론 전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4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국방부는 1999년 특전대원들의 천리행군과 사망 순간까지 전우와 조국에 관한 사랑을 보여준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 '아! 민주지산'을 제작했다. 특전사령부는 매년 3월 말께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사고 현장 아래(물한리) 세워진 위령탑에서 추모행사를 연다.

1998년 4월 1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숨진 국군 최정예 5공수 특전사여단 대원 6명을 소재로 만든 영화 ‘아!민주지산’.

ⓒ 유튜브 캡처
당시 대대장은 무리한 훈련으로 참사를 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 최강 부대의 천리행군을 극한 날씨라고 멈췄다면 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군인으로서 목숨 대신 '중단 없는 전진'을 택한 불굴의 특전대원들은 24년이 지난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영동 / 김기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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