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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명선생기념사업회, 사단법인으로 새 출발

생가복원, 기념관 건립 등 추진

  • 웹출고시간2021.05.12 11:08:48
  • 최종수정2021.05.12 11:08:48
[충북일보] 독립운동가 류자명 선생의 조국 독립을 위한 투쟁과 자유와 평등을 향한 끝없는 열정과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류자명선생기념사업회가 사단법인으로 새 출발한다.

기념사업회는 지난달 19일 충북도로부터 사업회 설립허가를 받고 이달 7일 법원에 법인설립 등기를 마쳤다고 12일 밝혔다.

사업회의 회장은 류자명 선생의 손자인 류인호 씨며, 자산 총액은 5천만 원이다.

류 회장은 사단법일 설립을 계기로 시민사회와의 협력체제를 구축해 류자명 선생의 선양사업과 중국과의 교류사업 등을 보다 활성화하고 생가복원과 기념관 건립 등의 숙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류자명 선생은 1894년 충주시 대소원면 영평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확산되자 제자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다 발각돼 서울로 피신했고, 대한민국외교청년단 설립활동에 참여했다.

1922년 봄 의열단에 가입해 핵심참모로 활동하며 통신과 선전활동을 담당했고 의열투쟁을 주도했다.

1933년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저해하는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처단하기 위해 이강훈, 백정기, 원심창 선생 등과 육삼정의거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나 거사 직전 실행 요원이 체포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1937년 중일전쟁이후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으며, 1938년 10월 우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조직되면서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이했으나 귀국하지 못하고 1946년 3월 대만으로 건너가 타이완척식주식회사에서 농업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1950년 6월 24일 대만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귀국하려 했으나 6.25가 발발하면서 귀국이 좌절됐다.

이후 중국 호남농대 교수로 있으면서 포도, 장미, 쌀 등에 관한 연구로 농업분야에 관한 많은 업적을 남겼고 중국인들로부터 존경받은 학자의 삶을 살아간 류 선생은 1985년 4월 17일 조국을 그리워하며 머나먼 타국 땅에서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애국장을 추서했다.

2006년 충주시가 중국에 있는 유족으로부터 유품을 기증받으면서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류 선생이 활동한 중국 호남성 장사에는 2013년 기념관과 흉상이 건립돼 운영되고 있다.

충주 / 윤호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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