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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 모자(母子) 순국 진천 광혜원 4·3만세운동 재조명

박도철 열사 등 현장서 4명 순국 등 충북 만세운동 최다 사상

  • 웹출고시간2021.02.23 14:18:21
  • 최종수정2021.02.23 14:18:21

1919년 3·1만세운동과 관련해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진천군 광혜원면 3·1만세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국가기록원 소장 3·1만세운동 피살자 명부의 박도철 열사 관련 기록.

[충북일보] 1919년 3·1만세운동과 관련해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진천군 광혜원4·3만세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23일 진천군은 1919년 4월3일(음력 3월3일) 당시 만승면(현 광혜원면) 광혜원리 만세시위에서 순국한 박도철(1888~1919) 열사에게 올해 3·1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고 밝혔다.

오인근 진천향토사연구회(광혜원만세운동기념사업회) 회원은 "모자의 한 맺힌 죽음이 102년 만에 풀어졌다"며 "당시 장터에 울려 퍼진 광혜원4·3만세운동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는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현창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 회원이 후손 등의 증언과 문헌 조사한 결과, 박 열사는 그동안 박치선, 유치선 등으로 잘못 전해져 확인과 심사 과정이 길어지면서 서훈 결정이 늦어졌다.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박 열사 일가는 경기 안성, 경북 상주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박 열사의 공훈은 음성군 금왕면에서 작성하고 현재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3·1운동당시 일인으로부터 피살당한 애국자' 명부에서 확인됐다.

박 열사는 광혜원리(바들말) 매방앗간 앞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며 항거한 박 열사의 어머니(이치원 추정)도 헌병의 총탄에 숨을 거뒀다.

광혜원면 만세시위에서는 당시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일제 측 문헌에는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하고 5명 또는 7명이 부상을 당했다.

1974년 펴낸 '진천군지'에는 박도철, 이치원, 김경윤, 윤광옥, 김득수, 김예원, 구모(이월면 동성리)씨, 성명미상(이월면 노은리) 등 9명이 순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제 자료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다. 현장에서 심한 상처를 입은 적잖은 참여자들이 응급 처치도 받지 못하고 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광혜원 4·3만세시위에서는 윤병한(애족장)·남계홍(대통령표창)·이영호(대통령표창) 등 8명이 옥고를 치렀고, 수십명이 고문 등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진천 / 김병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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