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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3.03 18:06:16
  • 최종수정2021.03.03 18:06:16

박일선

충북환경연대 대표

물길과 뭍길의 중심이요 최첨단 철산업단지가 있었던 충주는 상고시대부터 민족의 중심지였다.

수천 년 지탱되던 교통수단이 철도로 대체 되고, 그 길이 대전을 경유하면서 퇴보하게 된다.

이에 앞서 동학북접과 의병도시가 돼 일제의 모진 탄압 속에 도청마저 수탈당해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해방 후 군사정권도 일제가 구획한 경부축 불균형개발을 추구해 고속도로도 없는 도시로 긴 시간 남아야 했기에 산업단지 유치도 어려웠다.

또한 댐과 군항장으로 도시계획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겨우 고속도로가 났듯, '서울-충주-부산' 철도도 산고(産苦)를 속에 단선개통을 앞에 두고 있다.

임진란 참화 속에 신립장군 배수진 실패로 처참하게 도륙당하고, 감영도 공주로 이전됐다.

하지만 지리적인 이점으로 조선후기를 거치며 다시 번성하나 일제에 의해 또 다시 파괴됐다.

국(중)원소경과 국원경이 되고 감영이었던 충주를 부활시키는 것은 민족사를 바로 세우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을 보며 시민참여 속에 충주역은 디자인 돼야 한다. 충주가 내세울 자랑스러운 역사(歷史)를 역사(驛舍)와 광장에 담아야 한다.

역을 이용할 미래세대도 고려한 설계가 돼야 한다. 국토부나 충주시청은 비대면방식이라도 시민 생각을 꺼내는데 땀을 쏟아야 한다.

우륵일행이 천재적이며 열정적인 예술집단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를 나당연합으로 멸망시키고 그 예술로써 화합을 도모코자 했던 진흥왕의 의도 속에 우륵이 활용되고, 그들은 생존과 예술혼을 피우기 위해 협력했음을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을 키워 준 가야를 버리고 신라로 망명한 것을 잘했다고 박수만 칠 수 있을까· 일천 수백 년 전의 일을 몇 줄 사서를 통해 재단할 순 없다.

우륵은 그간 충분히 표현됐다.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역사는 없는가. 대몽항쟁은 세계사에 길이 빛날 업적이다.

30년간 9차례에 걸친 항전은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서 구해 낸 용전(勇戰)이었다.

천대받던 다인철소가 익안현으로, 국원성이 국원경으로 승격된 것은 아무리 자랑해도 부족하다. 이를 교육하고 알리지 못한 것은 오롯이 후손들 책임이다.

접근성이 부족한 마즈막재 대몽항쟁비를 역광장으로 옮겨야 한다.

후대들에게 민족정체성과 충주혼을 일깨워 줄 귀한 소재 아닌가. 이순신 장군이 있는 왕조를 지켜 냈다면, 류자명 선생은 없어진 조선을 통일민주국가로 되세우기 위해, 나약한 독립운동의 기관차가 된 조직가요 전략가였다.

그분의 아나키즘(참민주주의)은 자치와 분권, 기후변화시대인 지금에 더욱 조명 받아야 할 값진 사상이다.

우륵, 강수, 신립, 김생은 익은데 아직도 낯선 류자명. 그 '낯섦' 만큼 빚지고 있는 거다.

지덕겸이 배이신 독립투사이자 국제혁명가요 중국최고의 원예농학자이며 남북중국에서 유일하게 상·훈을 받으신 큰 선생이다.

민족화합과 통일·번영·세계화시대에 가장 걸 맞는 이런 분을 왜 역사의 중심으로 맞이하지 못하나· 박열 선생을 기리는 문경과 김원봉 선생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밀양을 본받아야 한다.

충주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서울과 평양, 델리, 파리를 갈 대륙열차에 중원혼을 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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