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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올해의 첫눈이 내린다. 창밖은 흰빛이 가득하다. 나뭇가지의 음영 사이로 새가 날아든다. 하얀색은 순수의 징표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눈은 구름 속에 숨어있던 눈 씨앗에 수증기가 달라붙어 얼음알갱이가 되고, 그것이 점점 커져 지상으로 떨어지는 신비한 물질이다. 아름다운 눈의 육각형은 제각각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적으로 눈을 느끼지 않는다. 눈이 펄펄 내릴 때 우리는 어떤 심상을 갖게 되는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흰빛의 평온함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우리의 마음은 즉각적으로,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에 경외심을 품는 것이다.

올 한해는 전 세계적으로 불안하고 어두웠다. 바이러스의 범세계 유행으로 사람들은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혔고, 여러 형태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야기되었다. 길고 긴 병마와의 싸움에 환자와 의료진뿐만 아니라,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소상공인들까지 모두 지쳐가는 상황이다. 다행히 미국 등 선진국 일부 나라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내년이면 이 현상이 종식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육체적 질병, 경제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앓기 시작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가 혹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가. 떨어지는 흰 눈을 바라보며 나는 순백의 깨끗한 세계를 그리던 시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눈 전문, 김수영

같은 시라도 시를 읽고 이해하는 마음은 시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시인이 위 시를 발표한 것은 1960년대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과 고뇌를 담아 시인은 <고결한 정신의 추구>에 대해 노래했을 것이다. 나는 이 시를 현재 상황에 대입하여 읽어본다. 불현듯, 어느 시대이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시대가 그러했듯, 현재 상황도 어려움에 부닥쳐있는 것이다. <눈>이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고결하고 순수한 세계라면 바이러스로 오염되어 있는 상황은 우리 <가슴의 가래>가 고여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는 행위는 우리 몸의 더러운 것을 스스로 치유하는 행위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 몸의 불순물을 모두 뱉어낼 때, 세계가 정화되는 것이 아닌가. 의료 처방도 중요하지만, 아마 더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가짐이리라. 그것은 나 스스로에서 출발해야 한다. 각자 자신의 몸을 정결히 하고 사회적 약속을 지켜나갈 때,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기침을 하자>는 시인의 청유는 시대를 떠나 언제나 순수함과 고결함을 지키자는 외침으로 들린다. 그것은 <죽음을 초월한 순수한 영혼과 육체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던 날, 한없이 눈발이 날리는 벌판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눈은 온 세상을 덮을 것처럼 끝도 없이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리는 밤에는 벌판길을 가지 말라고 어머니는 일러주셨다. 눈이 사람을 홀리는 경우가 있다고. 쌓인 눈이 길을 지워서 길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면서 그러한 정취는 잃어버렸지만, 첫눈이 내리는 날 순백의 눈앞에서 스스로 정화하는 마음을 갖는다. 세상의 어두운 것을 눈이 모두 지워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를 뒤덮은 질병이 사라지고 모든 이가 일상으로 되돌아갈 날을 기대해본다. 첫눈이 그려놓은 하얀 순백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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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