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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파란 가을 햇빛이 떨어진다. 단풍나무는 석양빛으로 붉게 물들고, 은행나무는 노랗게 타는 가슴을 연다. 바람이 분다. 물든 잎이 떨어져 날린다. 여름내 푸르게 피웠던 열정이 어디론가 떠나간다. 슬픔, 이별, 고독, 우수, 그리고 가을이 되면 찾아오는 본능적인 쓸쓸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소멸하는 것은 왜 아름다운 걸까. 가을 감성은 추억에 잠기게 하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게 하고, 새로운 만남을 찾게 한다.



또 한 잎 낙엽,

그 붉은 잎을 가슴에 묻는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는 피치카토로

'고엽'의 마지막 소절에

낙엽 소리를 몇 점 끼얹는다

너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너와

나 사이의 서늘한 바람 소리,

네 뒷모습이 이다지도 아프다

붉게 타오르는 서녘 노을

내 곁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는

잰걸음으로 가버리고

홍단풍나무 밑 벤치에 홀로 남는다

발치에 떨어진 낙엽 몇 잎이

나를 올려다본다

*조제프 코스마가 작곡하고 이브 몽땅이 불렀던 샹송.

- 고엽 枯葉*전문, 이태수



시인이 말미에 주를 달아둔 대로 이 시의 소재는 고엽이란 노래다. 프랑스 유명 시인 쟈크 프레베르의 시에 곡을 붙여 이브 몽땅이 '밤의 문' 이란 영화 주제곡으로 불렀다. 이 샹송은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듣는 노래이며 한국인에게도 친숙하다.

시인은 음악을 들으며, 공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을날의 분위기와 정서를 섬세하게 그린다. 피치카토(Pizzicato)는 바이올린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 음을 내는 기법인데, 시 속의 연주자는 떨어지는 낙엽을 튕기는 음으로 표현하여 청각을 통한 공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음을 듣는 시인은 그것을 문장으로 표현한다. 시의 미장센 (Mise en scene)이다.

시인은 낙엽이 지는 벤치에 앉아있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흐른다. 그는 옛일을 떠올리고 슬픔에 젖으며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서녘으로 노을이 진다. 극치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는 이미 떨어진 낙엽 같은 사랑을 돌아본다. 하지만 떨어진 낙엽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올려다본다. 물질적인 것이 사라진다 해도 기억의 저장고 속에 <붉은 잎>은 여전히 존재한다. 소멸하는 잎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생명성,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인은 죽은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자신을 바라보는 <인격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낙엽이 그를 올려보는 순간, 즉 존재의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소멸의 양상은 새로이 탄생하는 <재생>의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사랑에 대한 암시 아닐까. 모든 것이 불타고 사라지더라도, 사랑은 어딘가에서 고여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점에서 떨어진 이파리는 생명의 기록과 함께, 추억의 기록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 속에서, 낙엽은 소멸과 생성에 관한 강력한 힘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비슷한 정서를 만나면 늘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고 교류한다. 라디오 청취가 즐거움이었던 때가 있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황인용, 밤의 디스크 쇼 이종환,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 같은 유명 디제이들의 음악 방송을 들었던 시절이 오버랩된다. 지나간 것이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재생의 의미가 아닐까. 시대가 점점 첨단 기계화될수록 원형적인 것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몸에 자연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리라.

고엽을 다시 듣는다. 젊은 날의 사랑의 기쁨과 열정, 후회와 절망이 뒤섞인다. 한 해의 기록물처럼 금빛 은행잎이 하염없이 떨어진다. 저 기록이 소멸하여 흙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우리는 새로운 기록을 생성하며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음에 볼 낙엽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를, 더욱 아름답기를 기대해본다. 상념의 이파리가 날리는 가을이다. 쓸쓸하고 아득한 것이 흘러가다가 슬며시 발끝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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