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옥천군 '수형인명부' 로 독립운동가 찾았다

광복 75주년 손일만 씨 101년 만에 독립유공자 인정 대통령표창
옥천군 소장 범죄인명부 결정적 역할, 99년 만에 인정받은 박동희 씨도 큰 뒷받침
아직도 추서되지 않은 4명의 독립운동가…옥천군 명예회복에 총력

  • 웹출고시간2020.08.13 20:54:13
  • 최종수정2020.08.13 20:54:13

2013년 옥천군 청산면사무소 서고에서 발견된 범죄인명부. 1919년 3월 청산면 독립유공자들의 행적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 손근방기자
[충북일보] 옥천군이 소장한 '범죄인명부 일명 수형인명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 받고 있다.

101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손일만(당시 21·청산면 지전리) 은 범죄인명부가 큰 뒷받침이 됐다.

광복 75주년이면서 3,1 만세운동 101주년인 지난 3월 1일 손일만은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로 추서돼 대통령표창을 손자가 대신 전수받았다.

이는 옥천군이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숨어있는 옥천의 독립유공자를 찾아 나선 결과 중 첫 사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나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공자를 발굴해 명예를 회복하고 독립운동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다. 탐문조사를 통한 인적 망 활용, 수형인명부와 향토지, 국가기록원의 기록열람, 국가보훈처 등 다각적인 방법을 총동원했다.

군은 지난해 1월 청산면에서 3.1운동에 참가한 안소석(당시 42·지전리)과 손일만(당시 21·지전리)에 대한 자료일체를 국가보훈처에 제출했다. 청산면사무소에서 발견된 범죄인명부 등을 근거로 했다. 이 결과 손일만만 인정받았다.

명부에 손 선생은 1919년 3월 1일 청산면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191년 4월 30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원에서 태형 60대 판결을 받았다.

이 기록은 범죄인명부에 고스란히 있으며 죄명은 보안법위반이다.

안소석은 수형인명부 및 호적자료상 동일인물이 불분명한 것으로 판정돼 독립유공자가 되질 못했다. 군은 지난 1월 국가보훈처에 재신청한 상태다.
손일만의 경우 2018년 8월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이 개선된 점도 보탬이 됐다.

앞서 이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한 박동희(당시 23·청산면 백운리) 역시 뒤늦게 99년 만에 독립유공자가 돼 2018년 8.15일 광복절 대통령표창을 받았다.박 씨도 보안법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갖은 고문으로 시달리다 태형 60대를 맞고 출소해 한 달 뒤 숨을 거두었다. 범죄인명부가 큰 역할을 했다.

박 씨 후손들은 면사무소 협조를 받고 생존자 증언, 인우보증 등을 통해 보훈처에 심사를 요청, 마침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며 수년간 겪어오던 어려움이 한꺼번에 해소됐다.

하지만 광복 75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지 못한 독립 운동가가 옥천에는 4명이 남아있어 안타깝게 하고 있다.

1919년 청산면에서 3.1만세운동에 참가한 안소석, 안대봉, 최남석, 신업이 등이다.

당시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안소석(당시 42·지전리)은 1919년 4월 21일 징역1년, 안대봉(당시 22·지전리) 1919년 4월 21일 징역10월, 최남석(당시 27·예곡리) 1919년 4월 29일 태형 90대, 신업이(당시 21·백운리) 1919년 4월 30일 태형 60대의 형량을 받았다. 이들은 호적상 확인불가이거나 형량미달 등으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101년만에 독립유공자가 된 청산면 손일만 씨 유족들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전수받고 있다.

이처럼 또 다른 독립운동 역할을 하는 옥천군의 수형인명부는 청산면사무소 서고에 보관돼 있던 것이 2013년 신한서 전 옥천군친환경농산과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면사무소 직원이 법원으로부터 통보받은 재판내용을 기록한 것인데 정산면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의 근거와 과거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수형인 주소, 출생지, 본적, 본명, 생년월일, 직업, 죄명, 재판내용(형량) 등이 자세히 나타나 있으며 1919(단기 4252년)년 청산면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12명의 면민의 죄명이 기록돼 있다.

옥천군 관계자는 "광복 75년이 됐지만 안타깝게도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지 못한 4명의 독립운동가가 있다"며 "근거를 찾는데 큰 어려움이 있지만 명예를 회복하도록 행정력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옥천군에는 51명의 독립유공자가 있으며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12명의 독립유공자도 있다.

옥천 / 손근방기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