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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마스크 없이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그리워했나요. 지인과 마주 앉아 권커니 자커니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던 시절이 마냥 그리워지는 요즈음입니다. 집을 나설 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이웃이 없기를 부지부식간에 바라게 되는 야박한 세월입니다.

평범한 일상은 이제 그리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먼지처럼 혹은 바람처럼,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다가왔다가 훅하고 사라져 버리길 기대했던 몹쓸 역병이, 먼 나라에만 머물다 이 나라에는 발길조차 하지 않은 채 고요히 스러지길 바랐던 몹쓸 역병이 우리의 삶에 균열을 일으킨 지 벌써 몇 달째인지 모릅니다. 이제 그만 지쳐 모습을 감췄으면 싶은데 여전히 요망한 모습으로 똬리를 틀고 앉은 채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비틀고 있습니다.

연로한 사람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해독을 미친다는 경고가 두려워 몸을 숨긴 채 두문분출하고 있는 세월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필자가 농장을 소유하고 있음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한적한 좌구산 자락에 자리 잡아 인적이 뜸한 곳이기에 요망한 녀석과의 접촉을 두려워할 것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만나야 할 사람도 없고, 잡아둔 약속도 없기에 오롯이 농장에 들러 일하는 즐거움으로 소일합니다. 매일처럼 드나들기에는 체력이 달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를 들러 힘이 부치도록 일을 합니다. 덕분에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매끄럽게 해결되었습니다.

잡목이 자라나 어수선함을 주던 진입로를 예초기로 말끔하게 정리했는가 하면, 작년가을 미처 시간이 없어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대충 끝냈던 수목들의 전지를 한 그루 한 그루 세심하게 매만지며 찬찬히 다듬었습니다. 장마철이면 물이 넘쳐 가뜩이나 엉망인 비포장도로를 모난 돌이 툭툭 튀어나오도록 거칠게 만들었던, 길을 가로지르는 실개울도 넓고 가지런하게 정비해 세찬 비만 쏟아질라치면 덩그렇게 부풀던 걱정을 이젠 붙들어 매어도 됩니다.

그뿐인가요. 오랜 세월을 비워두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낡은 농가를 틈이 날 때마다 손질했습니다. 조금만 강수량이 쌓이면 비가 새어 천장에 얼룩이 남는 근본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함석지붕에 올라 곳곳에서 발견되는 틈새를 실리콘으로 빈틈없이 메웠고, 방마다 가득 채워져 있던 묵은 세간을 정리하는 한편으로 구석구석에 생긴 틈새를 몰타르로 메우는 등 단아하게 정비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실밭의 한편에 마련된 손바닥만한 텃밭에는 밑거름을 주고 씨앗을 뿌려 싱싱한 채소를 가꾸었습니다. 식사 때면 그 채소들은 아내의 손을 거쳐 일용할 양식이 됩니다. 상추, 치커리, 적근대, 돌미나리, 부추가 정갈한 모습으로 밥상에 오릅니다. 감자, 고추, 방울토마토도 머지않아 그 모습을 보이겠지요.

필자의 농장은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의 변화 모습이 도심과 비교할 때 보름 이상의 시기차가 있습니다. 때문에 필자는 항상 같은 계절을 두 번씩 느낍니다. 도심에서는 이미 끝난 벚꽃이며 매화 등 화사한 꽃의 만개를 보름 후쯤 다시금 감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요즘은 말끔하게 정리된 쥐똥나무 울타리에서 향긋한 꽃내음이 풍기는가 하면 겹겹이 포개어져 시루떡을 연상시키는 산딸나무 꽃이 한창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텔레비전이며 신문의 주요 기사를 코로나가 점령한 지 오래입니다. 이 환란의 시기에 '거리두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싱그러운 녹음에 묻혀 이름 모를 산새소리를 들으며 땀 흘린 보람까지 느낄 수 있는 농장을 가졌음은 필자에게 그야말로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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