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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15년 전쯤에 부산에서 종합병원 신경외과 과장을 하는 친구와 저녁을 같이 먹을때였다. 나에게 충청도에 있는 어느 병원의 척추수술로 유명한 과장을 아냐고 물어보았다. 다행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후배의 이야기는 '그 동네에 가서 등을 보이면 큰일 난다.'라는 것이 자기네 업계(?)에서 유명하게 회자되는 말이라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과장님에게 허리가 아프다고 가면 무조건 허리수술을 받는다는 것인데, 작은 수술도 아니고 척추뼈 3개를 붙여버리는 큰 수술을 20대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에 이렇게 척추뼈 3개를 융합시켜버리면 허리를 굽히지 못하고, 군대도 면제가 되는 수술법이었다. 아니 어떻게 전국적으로 유명한지 내가 물었더니, 그 과장님이 학회나 세미나에 와서 이렇게 자기가 수술한 사례를 자랑하고 다녀서 유명해졌다는 것이었다.

신경외과나 정형외과의 척추수술하는 의사들 내에서 그 분은 수술을 잘하는 손재주는 있지만, 과연 수술이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하는 양심은 의심이 든다고 하였다. 몇 년뒤 다른 정형외과 친구도 같은 말을 하였다. 술자리에서는 정말 좋은 선배의사지만, 약간의 디스크라 몇주 쉬면 좋아질 환자에게 수술해서 척추뼈 몇 개를 붙여버리면 군대도 면제되어 좋지 않냐고 자랑하는 것이 듣기 불편하다고 하였다. 이 분은 진심으로 자신이 좋은 일, 환자를 위하여 좋은 수술을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 선생님의 치료방침은 중세부터 과학이 아닌 믿음에 따른 치료를 해 온 중의학이나 무당과 다를 바 없다. 왜 이 분은 이런 정신세계를 가지게 되었을까?

사람에게 가장 큰 욕망 중에 하나가 칭찬받고 주목받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관종(관심종자)이란 말도 생겼을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에 자신의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여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은 사건을 조사해보니, 거짓청원으로 밝혀졌다. 세상에 이렇게 관심을 받고 칭찬을 받고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이어질 것이다. 유독 심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의 본성이므로 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욕망은 나도 있고 당신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나는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란 믿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범죄에 동참한 공범이 진심으로 나는 착한데 나쁜 친구의 꼬임에 빠졌다고 믿게 되는 것이고, 똑똑한 내가 사기를 당할 리 없다며 극구 사기당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이비 종교나 사기꾼들에게 더욱 큰돈을 가져다 바친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믿음의 체계와 관심병이 합쳐지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중세의 마녀사냥을 자행하던 종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있고,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이 봉건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꾼다며 젊은이들을 앞세워 홍위병이란 이름으로 자기 부모를 공개처형하던 죽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대게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거울 속의 잘나고 선량한 자신의 환상이 깨져버리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리, 즉 양심이 작은 소리로 '의심해봐, 돌아봐봐, 너의 행동을 합리화만 하지 말고, 네가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봐'하며 울렸을 테지만, 이들은 더욱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더 폭력적이거나 더 자극적인 언행으로 작은 마음의 소리를 짓눌렀다.

오늘 예를 든 자신의 믿음에 따라 수술하는 의사나, 봉건잔재를 청산한다며 자기 부모에게 죽창을 든 홍위병이나, 선의의 기부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분들이나 모두 시작은 좋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욕심이 생기고 사심이 곁들여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괴물로 변했을 것이다. 사실은 나는 더한 괴물일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이드로 변해왔을까. 오늘도 잠깐 방심하면 하이드씨가 되어 밤거리를 헤맬 것이다. 그래서 나의 친구 당신에게 부탁한다.

'내가 괴물에서 깨어나 지킬박사일 때에 나에게 사실을 알려주게, 그리고 깨어나지 못하여 영영 하이드로 있다면 더 큰 죄를 짓지 않게 나를 막아주게나.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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