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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3.30 16:45:46
  • 최종수정2020.03.30 16:45:46
나는 6.25 전쟁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전쟁이란 말 그대로 '참혹'과 '살벌', 그리고 인간의 내적 외적 파괴행위다. 그 결과는 죽음과 가난과 불행이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던 그 시절 나는 어머니를 따라 벽촌의 어느 농가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다. 공포와 극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던 마을, 그러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몇 안 되는 작고 허름한 초가집 앞뒤 뜰에는 모두 화초를 심어 기르고 있었다. 분꽃,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해바라기 등이 전쟁과는 아무 상관없이 피어 있었다.

그들은 왜 전쟁과 기아의 황망함 속에서도 돈이 되는 것도 아니요 밥이 되는 것도 아닌 꽃을 심고 가꾸었을까· 왜 그 꽃들에 바가지로 물을 퍼다 부어 주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한다'는 그 한마디 외에 무슨 다른 이유를 댈 수 있겠는가.

송강 정철은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라고 했다. 아마도 '자원방래(自遠方來)'한 유붕(有朋)과 반갑게 술을 마시고 있었을 터이다. 그때에 꽃을 참여시키는 심미안이 대단하다. 하기야 이백도 '양인대작 산화개(兩人對酌 山花開)'라 하지 않았는가.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마침 산꽃이 피어 아는 체하는 장면이다.

시인들은 그 시 속에 꽃을 들여 피우기 마련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누님같이 본 서정주나 난초 잎에 꿈이 온다고 노래한 정지용, 코스모스를 모자 쓴 소녀 같다고 노래한 김형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들이 그들의 시 속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꽃들을 많이 들여놓고 있다.

'피었다 몰래 지는/ 고운 마음을// 흰 무리 쓴 촛불이/ 홀로 아노니// 꽃 지는 소리/ 하도 가늘어/ 귀 기울여 듣기에도/ 조심스러라// 두견이도 한 목청/ 울고 지친 밤/ 나 혼자만 잠들기/ 못내 설어라.'

조지훈은 꽃의 마음을 알아보고 있다. 꽃 지는 소리는 하도 가늘어서 잘 들리지 않겠지만 시인은 그 의미까지도 알아내고 있다. 꽃은 왁자하게 또는 시끄럽게 피는 꽃도 있지만 남몰래 가만히 피었다 다소곳이 지는 꽃도 있다.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뜻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한국문인협회의 명예회장인 문효치 시인이 쓴 글의 일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하 시끄러워도 꽃들은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산수유와 매화가 소식을 전하는가 싶더니 개나리와 목련, 벚꽃도 고개를 슬쩍 들이미는 요즘입니다. 참 무심하게도 흐르는 세월입니다.

필자의 집안에서도 어김없이 꽃망울이 터지고 있습니다. 베란다에 갇힌 화분들이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유리에 갇힌 따듯한 공기 탓인지, 자연 속에서는 아직 피어날 꿈도 꾸지 않을 녀석들이 활짝 피어서는 꽃향기를 집안 가득 채우며 화려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영산홍은 이미 만개해 꽃잎을 부챗살처럼 펼친 채 진홍빛을 뽐낸 지 여러 날이고, 두통을 줄 정도로 향기가 너무 짙어 차마 방안에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인 스노우 버드는 팝콘 같은 꽃들을 버들강아지처럼 늘어뜨린 채 화사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어느 시인이, 꽃이 질 때면 마치 장수의 목을 친 듯 꽃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져, 그 모습이 너무도 보기 싫다고 표현한 동백도 타는 듯한 붉음을 자랑한 지 오래입니다.

더듬더듬 흐르는 수상한 세월이기에,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전하는 모든 소식이 한결같이 숨 막히고 답답한 나날이기에,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리 피어 도도하고 담담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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