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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20 14:20:52
  • 최종수정2020.02.20 14:20:52

한정호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20여 년 전 어느 겨울 늦은 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의대 졸업 동기들과 혹한기 휴가를 술로 달래던 날이었다.

청주보다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면 충청도 사투리와 다른 억양을 사용하는 어느 면. 이곳에 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배꼽에서 우측으로 5cm 정도 옆에 세로로 20cm 가량의 긴 수술에 의한 흉터(반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그 고을의 공중보건의의 놀라운 발견을 듣는 밤이었다. 아니 어떻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10대 남학생도 30대의 처자도 70대의 할머니도 같은 모양의 수술 흔적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궁금했다. 혹시 그 전설에 나오는 구미호? 배의 오른쪽이나 딱 간이 있는 위치. '놀라운 이야기 서프라이즈'에 제보를 해야 하는 것일까?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외과 전문의인 그 친구의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 오는 환자들에게 다 물어봤지. 그런데 받은 수술이 제각각이라 처음부터 미스터리였어. 어떤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거야. 그런데 너희도 알다시피, 맹장염으로 수술했으면 배의 오른쪽 아래쪽에 가로로 흉터가 있어야하잖아? 그리고 또 어떤 아주머니는 5년 전에 담낭염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거야. 그런데 담낭절제술을 받으면 우측 위쪽 복부에 가로로 흉터가 있어야하잖아?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맹장염 수술을 받았던, 담낭절제수술을 받았던 모두 우측복부에 세로로 길게 흉터가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수술을 받았기에 이런 동일한 흉터가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 '그러네, 도대체 무슨 수술이야? 정말 뒷산에 구미호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장기밀매? 우측 신장을 떼려고 그런 거야? 뭐야?' 다들 이유가 궁금해서 좌중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용히 지면서, 연사의 입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 동네에 몇 달쯤 지나서 마을의 높으신 분들이 불러서 저녁을 먹게 되었어. 이런 동네에서 면장, 파출소장,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등 알잖아, 마을 유지들. 그리고 그 동네에 40년째 개원하고 있는 작은 의원의 원장님. 이렇게 모였지. 술이 몇 잔 돌고나서 외지 사람인 나에게 여기 모인 분들이 이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설명해주는 칭찬타임이 지나가고, 내가 물었지. 마을 사람들의 배에 있는 의문의 흉터가 무엇인지.', 면장님이 만면의 미소를 띠면 설명이 시작됐다고 했다. '아, 이 흉터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의사 선상님이 의술, 인술을 배푸셔서 우리 동네 사람들의 2가지 병을 한번의 수술로 모두 치료한 것이여. 그러니까 말이여,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아야하면 우리 성님이 어짜피 전신마취 걸고 배재는 길에 쪼까 더 째서 쓸게(담낭)도 떼어주고, 담낭염 수술을 받아야하면 또 쪼까 더 배때기를 째서 맹장도 떼어주고. 아따 그래서 우리 동네 사람은 두 번 배를 안 열어, 한번만 열면 그거로 끝이여!' 40년을 넘게 이 동네에 개원 중인 백발의 원장님은 부끄러운 듯 허허하고 웃으시며, '아 이 사람아 뭐 이런 것이 뭔 칭찬꺼리라고 그런다냐. 인술을 베푸는 의사로서 당연한 거제. 도시 의사들은 깍정이마냥 맹장염이라고 맹장만 떼고 그러더만, 의사가 그러면 안 되지. 한번 배를 열면 환자의 미래를 생각해서 다 떼버려야제.' 이제까지 미궁에 빠져있던 마을 사람들의 배에 있는 같은 모양의 흉터는 한명의 의사가 만든 수술흔적이며, 예방적 맹장절제와 담낭절제라는 과학과 의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술방식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명의라는 소리를 듣도록 하는 진료방식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직업이나 지적수준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반응을 보인다. 나 같은 의사, 특히 내과와 외과 같이 메이저 진료과 의사들은 이런 수술 방식에 대하여 분노를 한다. 의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돌팔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오, 그럴 듯한 이야기인데? 말이 되잖아. 두 번 수술 안하고 어차피 배 열고 수술하는 길에 2개를 다 해결하는 거니. 요즘 게임언어로 원 샷, 투 킬이란 거 아닌가?'라고 반응을 한다. '천갑산이나 박쥐가 정말 정력에 좋을지는 모르지만 먹어서 손해 볼 것은 없잖아?'라는 것과 같은 논리로 나에게는 들리건만,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누가 옳은 판단일까요? 다음 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본 글의 지명과 인명은 신상털기를 피하기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지만, 내용은 모두 사실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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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