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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정사(正史)는 산 자의 몫

두 열사 죽음, 하늘과 땅 차이였다

  • 웹출고시간2019.12.18 16:03:40
  • 최종수정2019.12.18 16:03:40

김정일

여행작가·중앙대학교4·19혁명 기념사업회회장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제 80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튿날 신문에는 "알고 계셨나요 어제 순국선열의 날" 한 줄의 글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사진 한 장 이었다. 이 신문의 기사처럼 후손들은 잊어가고 있다.

2020년은 4·19혁명 60주년이다. 필자는 혁명이 일어나던 당시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으로 앞장섰다. 4·19혁명 때 대학생 중 중앙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6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그 중에는 충청도 출신이 3명으로 청주고 김태년 열사, 단양공고 지영헌 열사 그리고 금산에 대전고 조병래 열사가 산화했다. 지금까지도 무거운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 4·19혁명사를 후세에 제대로 남기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23년 전 필자는 서울 수유동 4.19민주묘지에 떨어져있었던 4.19혁명 영혼부부 김태년 열사와 경기 용인 출신 여학생 서현무 열사를 합장시켜 메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열사들의 뜻과 정신을 기리는 것이 살아 남은 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 수소문 끝에 후배인 전남 순천고등학교 출신 송규석 위령비 (고흥 과역초교 정문 앞)를 찾아 참배했다. 선배가 아닌 산 자로서 먼저 챙겨야 했다. 60여 년간 드러나지 않아 그의 이름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 먹먹한 아픔이 밀려왔다.

반면 충북 단양군은 후배인 지영헌 열사를 추모하는 열정과 정성이 대단했다. 이를 직접 보고자 지난 10월 27일 단양군청 예산팀 장진용 주무관을 찾았다. 그의 도움으로 대성산에 있는 4·19혁명 민주금자탑과, 단성면에 있는 지 열사 모교 단양공고(현 한국호텔관광고)교정에 세워진 지영헌 열사추모비를 참배하고 돌아왔다.

모두 나라를 위해 희생됐지만, 두 후배의 사후는 너무 달랐다. 지 열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단양에서 4·19혁명 추모제를 열고, 그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단양공고 동창회 주관으로 2006년 4·19혁명 '민주금자탑'을 세웠다. 그곳에는 그의 사진, 생애, 경과보고와 중앙대학교 총장의 헌사까지 기록됐다. 4·19혁명 정신을 그대로 담아 단양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숭앙받고 있다. 그 기념탑 앞에 서니 숙연함과 동시에, 단양이 역시 충절 고장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자유를 찾자고 외치며 지영헌 열사와 함께 목숨을 바친 송규석 열사는 추모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4·19혁명의 의로운 희생이 기억 속에 사라져갔다. 잊혀진 송 열사의 쓸쓸한 죽음에 빛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2016년 12월 고흥 문화원에서는 1500여 쪽에 달하는 "마을 유래지"를 펴냈다. 이 책자를 보면 과역면 석봉리 봉촌마을은 송규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 지역에 알려진 인물로 구의원 송광수를 비롯하여 20명이 등재되어 있다. 송규석은 찾을 수가 없었다. 고흥읍 현충공원에 세워진 '현충탑' 후면에 어렴풋이 학생 운동자 '송규석' 이름 석자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모교 과역초등학교 정문 앞에, 56년 전 과역면민들이 세워 준 4.19혁명에 산화한 송규석 군의 위령비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비문에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피를 토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배우는 학도여, 길가는 나그네여 여기 못다 피고 떨어진 꽃이 있다오. 이 땅의 자유가 그립기에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 날의 총탄 앞에 맨가슴을 헤치고 뛰어 갔더래요. 청춘을 불태워 피 거름으로 가꾼 이 땅 위해 자유의 열매를 맺게 해다오. 배우는 학도여 길가는 나그네여. 1964년 9월' 이라고 새겨저 있다.

송 열사 비문을 보면 볼수록 우리 현대사의 슬픈 역사가 아로새겨진다. 비문에 적힌 대로 뜻있는 길손이 볼 수 있도록, 누군가가 길 안내 표지판(헌충시설물) 하나라도 세워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티끌 만한 물방울이 대해를 이루듯이 필자의 절규가 현충탑에 새겨진 송규석 이름 석 자를 단초로 삼아, 단양의 민주금자탑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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