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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인고의 삶…'명장' 반열 오르다

25일 김기종 토지도예 대표, '충북 명장' 선정
숱한 어려움에도 '최고 도예가' 목표로
30여 년간 묵묵히 도예가 길 걸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라" 당부

  • 웹출고시간2019.11.25 20:20:20
  • 최종수정2019.11.25 20:20:20
[충북일보 신민수기자] 학문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명장(明匠).

사전적 의미는 간결하지만 진정한 명장으로 불리기 위해선 결코 짧지 않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도자기 직종 최초의 충북 명장으로 선정된 김기종(54) 토지도예 대표도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며 3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묵묵히 도예가의 길을 걸어 왔다.

학창 시절 화가를 꿈꾸던 김 대표는 지난 1983년 청주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에 입학하면서 도자기 공예를 시작했다.

도예가의 삶을 선택한 순간,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삶을 향한 욕심은 내려놓았다.

도자기 직종 최초로 충북 명장(明匠)에 선정된 김기종 토지도예 대표가 공방에서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고 있다.

ⓒ 김태훈기자
1991년 장교 퇴직금과 적금을 합한 300만 원으로 중고 가마와 물레를 구입해 첫 작업장을 갖췄다.

하지만 신인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서 강의도 했지만 삶을 꾸려나가기엔 벌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정신적·육체적 피로도 컸다.

좋은 작품을 위해 늘 고민했다.

직접 흙을 반죽해 성형하고 건조한 뒤, 가마에 굽고 유약을 바르고 다시 굽는 육체적 노동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최고의 공예가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다.

긴 세월 흘린 땀과 눈물은 배신하지 않았다.

현재 그는 우수한 품질과 예술적 가치 두루 갖춘 도자기를 빚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공예가로 불린다.

그러나 김 대표는 여전히 스스로를 최고라 칭하지 않는다.

여전히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다.

명장의 반열에 오른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소 나아졌을 뿐, 주머니 사정은 늘 넉넉하지 않다.
고뇌는 최고를 꿈꾸는 명장의 숙명이다.

25일 김 대표는 최규간 ㈜LC휀스 부장(품질관리 직종)과 방순극 BS컨설팅 대표(기계생산관리 직종)와 함께 도청에서 2019년 충북 명장 증서 및 현판을 받았다.

이날 만난 김 대표는 후배들을 비롯한 많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젊은 시절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단 생각에 기쁘다"며 "편한 명장은 없다. 두려움에 맞서 도전을 하는 사람만이 성취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에게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며 "충북 명장으로서 더 나은 작품 활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 신민수기자 0724s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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