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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다. 다행히 가을걷이도 끝내고 김장도 하였다. 일요일에 내리는 비는 어떤 평화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아마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어서 그런가 보다.

얼마 전 시댁에 갔을 때도 비가 내렸다. 보슬비가 오는 시골 풍경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남편과 나는 들판으로 산책을 나섰다. 언제 서리가 왔었는지 담벼락의 호박잎이 축 늘어져 있다. 비를 맞고 있는 초목은 참선하고 있는 수도승 같다. 수확을 끝낸 텅 빈 논에는 흔적인 양 싹둑 잘려 나간 벼 포기가 도열해 있다. 무엇인가 아릿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고 지나간다. 단풍잎이 허공에 날아다녔다. 잠깐 그 모습이 멋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바람은 물들지 못한 나뭇잎마저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낙엽이 된 이파리들이 왠지 서러워 보였다. 서러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잘 익은 알곡들은 주인을 찾아갔건만 논 주인은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벼가 한창 자라고 있을 때 언론에서는 대풍을 예상하였다. 들길을 지날 때마다 익어가는 곡식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병해(病害) 없이 자라는 벼를 보고 있으면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부지런한 농부일 거라고 칭찬을 하고 불쑥불쑥 솟은 피(잡초)를 보면 낯모르는 주인의 게으름을 보고 흉을 보곤 하였다. 그러나 잦은 장마와 뒤늦게 들이닥친 몇 번의 태풍은 벼를 쓰러뜨리고 지나갔다. 따라서 수확이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밭농사 역시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다고 하였다. 농사가 풍년이면 가격이 하락하고 흉년이 오면 투자한 농사자금도 나오지 않는 게 농촌 현실이란다. 농민의 딸이라서 그런지 바라보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

문득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이 스쳤다. 세 명의 여인이 이삭을 줍는 모습은 시골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밀레는 경건한 신앙심과 농민에 대한 애정으로 농촌의 풍경과 생활을 그렸다고 한다.

이삭줍기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만 해도 학교에서 가지고 오라는 것이 많았다. 그중 추수가 끝나면 이삭을 주워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언니 오빠와 함께 이삭을 주워 낟알을 만들어 가지고 가기도 하였다. 그때는 혼식을 장려하던 시대였다. 그만큼 쌀이 귀했다. 아마도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때는 '통일벼'라는 품종이 나온 이후였던 것 같다. 밥맛은 없지만, 수확량이 많아서 많은 농민이 통일벼 품종으로 농사를 지었다. 탈곡을 마치고 마당에 높이 쌓인 볏가마니를 보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아버지 모습은 어제인 양 생생하다.

바람이 부는 빈들을 바라보며 검게 그을린 농부의 주름진 얼굴을 생각해본다. 정부의 농업 정책에 허리가 휘어도 최선을 다한 농부의 마음에 후회가 없기를 바란다. 또한, 농민들은 한숨을 토해내면서도 내년에 뿌릴 씨앗을 제일 잘 여문 것만 골라 내년의 희망으로 묶어 놓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논두렁을 걷다가 남편과 나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시댁 논에서 발을 멈추었다. 여기에서 수확한 쌀로 사 남매가 양식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있다. 고마운 마음은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떠올리게 하였다. 논을 둘러보는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지난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었다.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알리고 노고를 위로하기 위함이 제정 목적이라고 하였다. 이날도 농업인의 노고에 감사하는 기념행사가 개최되었으며 '가래떡의 날'로 정하여 쌀 소비를 촉진하는 이벤트를 여는 행사도 이루어졌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우리 농민들이 위로받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는 고향이 되어버린 어머님이 계신 그곳, 시댁에도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어머님은 어쩌면 동네 어른들과 빈대떡을 부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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