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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10.21 16:19:07
  • 최종수정2019.10.21 16:19:07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가을이 익어가는 13일 일요일을 맞아 충주종친회원들과 함께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소재한 운강 이강년 선생 순국 111주년을 기념하는 추모문화제에 참반(參班)하였다. 출발시간이 일러서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에 있는 효령대군 영당(影堂)을 먼저 찾아갔다. 이곳에 모셔졌던 영정은 서울 방배동 청권사 사당으로 옮겨갔지만 남아있는 영당의 영정 앞에 후손으로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가은으로 향하여 이강년 선생 추모제에 참석하였다. 선생은 1858년(철종 9년)에 태어나셨다. 전주(全州)이씨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礻+甫)의 18대손이다.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제천으로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유인석의 문인이 되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평천·조령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일본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되자 영춘(永春)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때마침 원주진위대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閔肯鎬)부대와 합세해 충주를 공격하였다. 1907년 7월 7일 제천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해 9월 16일에는 싸릿재[杻峙], 9월 27일에는 죽령, 10월 5일에는 고리평(故里平), 10월 23일에는 백자동(柏子洞)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전국의 의병들이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각도 의병장을 따라 양주에 집결해 13도 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자,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이에 참석하였다. 다음 해인 1908년 봄부터 휘하장병들을 독려하여 2월 17일의 용소동전투(龍沼洞戰鬪)를 비롯해 2월 26일의 갈기동전투(葛其洞戰鬪), 3월 12일의 백담사전투(百潭寺戰鬪), 4월의 안동서벽전투(安東西壁戰鬪)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강년의 의병활동 지역은 주로 강원도·충청도·경상북도 일대에 걸쳤다. 저서로는'운강문집'이 있고, 또 그 제자와 의병시절의 부하들에 의해 엮어진『운강선생창의일록』이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이날 추모제는 식전행사로 점촌3동 농악단의 길놀이로 시작하여 한두리국악단의 사물과 대평소 합주에 이어 개회식이 이어졌다. 두 편의 추모시 낭독과 조총발사가 있었다. 추모공연으로는 가은초 학생들의'의병의 노래'문경여고 합창단의'독립운동가'육군 제 5837부대 5대대 공병부대 장병의'전선을 가다'공연에 이어 만세삼창으로 추모는 마무리가 되었다. 경내에서는 운강 선생의 위패를 모신 의충사에서 유족 및 청권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기신제가 진행되었다. 올해는 서울에서 청권사에서 제향을 주관하여 더욱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이갑재 청권사 이사장이 초헌관을 맡고 문경시장을 대신하여 가은 읍장이 아헌관을, 기념사업회장이 종헌관을 맡아 엄숙한 가운데 기신제가 올려졌다. 부대행사로 식장주변에 운강 격문(檄文) 및 시 패널이 전시되었고, 기념관 옆에서는 활쏘기 체험도 진행되었다. 임승천 시인의 "님이여 ! 바라보소서, 살피소서"에 "나라잃은 슬픔과 울분으로 일으켰던 창의(倡義)의 깃발 오직 나라사랑과 백성을 위한 일념으로 싸웠던 님의 기개 십삼년 동안 두 번의 창의와 서른번의 격전으로 철천지 원수 적을 참수하였던 그 장한 기개와 의지"라는 싯구가 가슴에 울림으로 닥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제 1관문에서 열리고 있는 문경사과 축제장과 수옥정을 둘러 보며 보람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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