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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자정을 넘기고 일기장을 펼쳤다. 겉표지에 끼워져 있는 흑백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의 얼굴과 오빠, 언니의 소박한 모습을 바라본다. 엄마는 30대 초반이고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나는 뽀얗게 살이 오른 세 살의 아기 모습이다. 그 아기가 자라 벌써 이순을 맞았고 손자도 두었다. 세월의 저편에서 살아온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지나간 시간을 사진첩에서 꺼내듯 지난 추석에 다녀온 고향을 더듬어 본다.

 차는 강변도로를 달렸다. 이른 아침 안갯속을 헤치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부지런히 걷던 등하굣길이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나루터가 나온다. 예전 그곳은 목성균의 수필 '세한도'에 나오는 장면과 비슷하였다. 동네라고도 할 수 없는 산골짜기에 띄엄띄엄 몇 채 안 되는 집 가운데 뱃사공의 집은 나루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납작 엎드린 허름한 집은 그 시대의 형편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중·고등 시절 합하여 6년이란 세월을 배로 강을 건너다녔다. 나루터는 집과 학교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 그래서 반은 걷고 반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사공 아저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는 복권에 당첨된 것만큼 운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손님을 태운 배가 강을 건너고 있거나 강 건너 나루터에 있을 때는 기다릴 시간 없어 산모퉁이를 돌아 신작로를 걷고 또 걸어 학교에 갔었다. 이제는 나루터도 없고 사공도 없지만, 목을 길게 빼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애써 흔적을 찾아보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굽이굽이 돌아서 다니던 산길이 곧게 뻗은 아스팔트 길로 변해 미끄러지듯 차는 달렸다. 지난날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씀이 생각났다. 병석에 누워계셨던 아버지는 "조금 있으면 길도 좋아지고 버스도 다닌다고 하는데……."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고향에 오면 저절로 생각나는 아버지 모습이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니 산등성이가 보였다. 그 길은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지름길이다. 하굣길, 산등성이에 오르면 서쪽 하늘에 주홍빛 노을이 펼쳐지고 산 아래 자리 잡은 보금자리가 유화 같았다. 굴뚝에선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하얀 수건을 두른 엄마와 삼태기를 들고 분주하신 아버지 모습도 보였다. 한달음에 뛰어 내려가 집에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 주시던 부모님이셨다. 하지만 이제 양친은 모두 세상을 떠나시고 안 계신다. 고향을 지키고 있던 작은 오빠마저도 정든 집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고 시내로 거처를 옮겼다.

 그래도 뒷동산만은 세월의 비바람을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웠다.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이름 모를 묘는 무성한 풀밭으로 변했다. 반쯤 넘어진 채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비석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어릴 적 높았던 산이 낮아 보여 혼자 웃음 지어 본다. 산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어른이 되었음이다.

 추석을 맞아 부모님의 유택을 찾아가는 산길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촌오빠의 묘를 지나야 한다. 몇 발짝 걸음을 옮기면 경주이씨 조상님도 만날 수 있다. 부모님 산소를 중심으로 친척들의 묘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영혼이 있다면 저승에서도 외롭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오랜만에 찾은 부모님께 절을 하며 생전의 모습을 생각한다.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하며 속울음을 삼킨다.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하루만이라도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쩌랴. 세월은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 흐르는 물은 절대로 거슬러 올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지난 것은 모든 것이 그립고 아쉽고 안타까운가 보다.

 추석이 지나고 부쩍 떨어진 기온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알밤이 벌어지고 도토리가 익어가는 계절, 지금쯤 고향 뒷산에서는 청설모와 다람쥐의 숨바꼭질이 한창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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