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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한 가족은 식구(食口)이며, 살아 있는 입은 생구(生口)이다. 우리 조상들은 소를 살아 있는 입인 생구라 여겼다.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말하는데, 소를 생구라고 한 것은 사람대접을 할 만큼 소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소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까지 우리 사회가 농경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다. 소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비록 모든 것이 변화된 현실이지만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기에 삶에 대한 참모습을 소를 통해 볼 수 있다.

 아래 시는 소를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소는 우리와 여러모로 친밀한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 동물이기에 이런 노래가 가능했을 것이다.

 박달나무를 불에 구워 코뚜레를 만든다/ 동그랗게 오므려 코에 끼우고 소의 자유를 빼앗는다/ 코뚜레에 고삐를 매어서 제 갈 길을 알려주지만/ 이미 자유를 빼앗긴 소의 갈등은 끝이 없다/ 고삐를 한쪽으로 당기면/ 소는 고집불통의 울음을 쏟고/ 절구 같은 머리통을 반대쪽으로 돌려 무조건 반항을 한다/ 그래서 소의 힘은 세다/ 세월에 닳은 소의 마른 무릎이나 쇠발통 같은 발굽에서 힘이 솟는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소 발굽이 땅바닥에 도장처럼 찍히고/ 푸른 풀줄기 사정없이 꺾이면 거나한 울음소리/ 밭머리 좁은 골짜기에 가득 찬다

 - 유진택, '코뚜레' 전문

 소를 가축화하여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천 년경이다. 이 정도 세월이면 야성이 사라질 수 있는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소를 길들여야 한다. 야성이 순화된 상태라 해도 새끼소에게는 본능적인 야성이 남아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야성을 꺾고 인간이 부리기 좋도록 훈련하려면 박달나무를 불에 구워 코뚜레를 만들어, 동그랗게 오므려 코에 끼우고 고삐를 만들어야 한다.

 코뚜레가 코에 끼워져 있고 고삐에 묶여있는 소는 자유를 찾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다른 가축보다는 더 강한 탓일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자유가 박탈당해 슬퍼하고 분노했던 것과 같이 소도 자유를 잃고 묶여있으니 많이 슬플 것이다.

 "코뚜레에 고삐를 매어서 제 갈 길을 알려주지만/ 이미 자유를 빼앗긴 소의 갈등은 끝이 없다" 그 끝없는 고행 길을 가는 소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몰려오는 새벽시간이다.

 "푸른 풀줄기 사정없이 꺾이면 거나한 울음소리/ 밭머리 좁은 골짜기에 가득" 차고 있는 동이 터오는 시간, 소와 같이 소새끼와 같이, 죽어라 일만하도록 내몰리고 있는, 자본에 의해 함몰된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다.

 우리는 이 땅에 아직 기적처럼 살아가고 있다. 살아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 그 자체이자, 무한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생존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며, 문화인으로, 지식인으로, 자유인으로, 품위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된다.

 살아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세월에 닳은 소의 마른 무릎이나 쇠발통 같은 발굽에서 힘이 솟는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소 발굽이 땅바닥에 도장처럼 찍히"듯 새벽 첫 차 전철에 버스에 오르고, 내리고 있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 땅에 마이너리티로 존재하지만 묵묵히 무너진 흙담을 고치고, 송아지도 새로 사들이고, 밭에 나가서 괭이질을 하며, 삶의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는 농부와 황소처럼 살아가고 있다.

 하루 일상이 시작되었다. 밤새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여성 이주 노동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코뚜레에 채워진 운명의 고삐를 벗을 날 수 있도록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울음소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울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눈물 닦아 드리오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눈물 멈추세요! 알았지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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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