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9.08.28 16:48:34
  • 최종수정2019.08.28 16:48:34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우리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으레 행정 구역 개편과 함께 지명을 새로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제에 의하여 지명이 바뀐 것도 식민지 지배를 위해 당연한 결과인 것을 공연히 견강부회하여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1914년 전국에 걸쳐 실시한 행정구역 개편에 의한 행정지명의 예를 보면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경우 천기음면(川岐音面), 지내면(枝內面), 두의곡면(豆衣谷面) 등 3개의 면을 통폐합하여 삼성면(三成面)이라 이름지었다. '천기음면(川岐音面)'은 냇물이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마을로 자연지명이 '냇거름'이며 '川岐音面'이라 표기한 것은 '냇거름면'이라 읽어야 했기 때문에 '音'이 필요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지내면(枝內面)'은 '가래실면'이요, '두의곡면(豆衣谷面)'은 '두루실면'으로서 자연지명을 그대로 살린채 행정단위인 '면(面)'을 붙여 사용해 왔는데 하루아침에 이러한 고유의 우리 이름을 말살하고 '삼성면(三成面)'이라 했던 것이다. 음성읍 용산리(龍山里)의 경우 수현리(壽峴里), 월곡리(月谷里), 중산리(中山里), 용추리(龍湫里), 사인동을 병합하여 용추와 중산의 이름을 따서 용산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시켰다. 새 이름을 짓는 방법은 조선시대에도 사용하던 방법으로 두 지역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드는 식으로 했으니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큰 단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한 행정명의 변경이 아니라 굳이 자연 마을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최소 행정단위를 모두 개편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었다는데 있는 것이다. 자연 지명들에는 우리의 역사, 지리, 풍속, 성씨, 종교, 언어 등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중요한 것인데 이런 이름을 일제는 교묘히 바꿔치기한 것이니 어느 왕조에서도 커다란 행정 단위의 명칭만 바꾸었을 뿐 이러한 짓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를 원상으로 회복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더 작은 단위의 행정구역의 명칭으로서 자연 지명을 살려나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고개, 골짜기, 들판 등의 자연지명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앞으로 새로운 지명을 만들 때 사용한다면 영원히 보존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은 그 방법에서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지만 식민지 통치를 위해 필요했다고 치더라도 다음과 같은 창지개명은 일제의 풍수 침략이라는 잔인한 의도를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전국의 초등학교 교가를 보면 대부분 '○○산 정기 받아', '○○강, ○○천' 등의 구절이 나올 정도로 우리는 지맥이나 풍수사상이 우리 민족의 기층 사상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집을 지을 때나 묘 자리를 선정할 때, 이사 갈 때 등 생활 전반에 풍수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눈치챈 일제는 풍수 침략을 시도했던 것이다.

풍수 사상의 원조인 중국에도 '봉황산(鳳凰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많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봉황산'이 많이 있는 것은 봉황산이 풍수지리적으로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의 산세를 보이므로 인근의 마을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산은 주민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는 조선에 더 이상 인재가 나오지 않아 앞으로도 나라를 찾지 못하고 영원히 식민지로 지내야 한다는 믿음을 조선 민족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봉황산의 이름을 창지개명하였다. 우선 토지 조사 사업을 하면서 봉황산에 쇠말뚝을 박을 뿐만 아니라 산이름을 교묘하게 바뀌치기하였다. 즉 봉황산의 '황(凰)'자를 떼어내고 날아갈 '비(飛)'자를 넣어 '비봉산'으로 바꾼 지역이 경기도 안성시 이죽면의 비봉산 등 16 군데나 있으며 대전광역시에 있는 계족산(鷄足山)의 본래 이름도 봉황산이었다. 일제는 '용과 봉황'이란 말이 지명에 있으면 용과 봉황의 기운을 받아 기세가 세질 것을 우려하여 다른 언어로 바꾸거나 봉황을 닭(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경상북도의 명산인 주왕산에 있는 3개 폭포의 명칭도 본래 이름은 용추폭포, 중용추, 용연폭포이었는데 이를 제1폭포, 선녀탕, 제3폭포로 바꾼 것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풍수 체계를 송두리째 혼란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산줄기 체계인 산경표를 없애고 산맥 개념으로 바꾸었는데도 우리는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해방 후에도 한동안 산맥 개념의 지리 교육을 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완전한 청산을 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