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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아파트 쓰레기장이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차곤 한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의 실정으론 이런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가구는 물론 살림살이 등이 마구 버려지는 것을 볼 때마다 아까운 자원이 낭비되는 듯하여 안타깝다.

며칠 전에도 아파트 쓰레기장에 수입 가구들이 버려진 것이 눈에 띄었다. 주민이 이사를 하며 버리고 갔나보다. 보기에도 근사한 디자인의 가구로써 화장대를 비롯 서랍장, 책상, 쇼파 등이었다. 그중에 책상에 눈길이 머물렀다. 눈여겨보니 어느 곳 한 군데도 흠결이 없다. 서랍 하나가 부서진 것 외엔 상태가 너무나 양호하다.

그것을 보자 문득 어린 날이 떠올랐다. 너나없이 풍족하지 못하던 그 시절 별표 전축, 전화, 책상, 그리고 피아노가 있는 집은 그야말로 근동에서 손꼽히는 부잣집이었다. 당시 서민들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못할 물건들이었다. 하다못해 부엌에 그릇과 반찬을 넣어두는 찬장도 제대로 못 갖춰, 시렁을 만들어 그 위에 그릇을 얹고 반찬을 보관하기도 했잖은가. 요즘 젊은이들이나 어린이들은 상상도 못할 궁색한 삶이었다. 냉장고는 남의 나라에만 존재하는 가전제품이었다.

이 탓에 겨울철이면 한 해 양식인 김장을 몇 백포기 씩 담아 땅 속에 항아리를 묻어두고 저장하였다. 오죽하면 주부들은 김장 담는 일이 집안의 가장 큰 연례행사로 여겼을까. 돈 몇 푼만 쥐고 나가면 입맛 대로 김치도 사먹는 요즘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책상을 집안에 갖추는 일은 엄두도 못 내었다. 큰 두레상을 펼쳐놓고 형제들이 상 위에 연필로 금을 그어가면서 엎드려 숙제를 했고 공부를 했다. 이 때 서로 자기 책상이라고 다투기 예사였다. 가난한 지난 시절, 흑백 사진에서나 봄직한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옛 시절 가난의 아픈 기억을 새삼 불러일으키는 어느 가게 간판 문구가 인상 깊다. 이는 어쩌면 나만의 쓸데없는 기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름 아닌 동네 구두 수선 가게 앞에 세워진 입간판 내용인, '금이빨 삽니다' 가 그것이다. 어제 그 가게 앞을 지나칠 때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정도 되는 여자 아이 두 명이 구두 수선 가게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 은비야! 어른들은 이도 뽑아서 파는가 봐." 그러자 은비라는 아이가, " 우리 할아버지도 금니 하셨는데 안 팔던데." 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비록 철부지 어린아이들 말이지만 평소 그 간판 문구를 대할 때마다 나 역시 그 내용에 대하여 못내 궁금하던 참이었다.

'혹시 치과 치료를 받다가 못 쓰게 된 금니를 이 가게에선 매입한다는 말인가·' 가게 앞에 세워진 입간판 앞을 지날 때마다 금니의 공급과 수요의 과정에 대하여 궁금증이 증폭되곤 했다. 하지만 직접 가게 주인에게 물어볼 용기는 못 내었다. 다만 어려워진 경제로 지난 시절 겪었던 뼈저린 가난의 망령이 되살아 난 것쯤으로만 짐작했다. 어린 시절엔 하다못해 머리카락도 엿장수가 사갔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금니도 매매가 가능할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왠지 '금이빨 삽니다.' 이 문구에 대하여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동안 눈부신 경제 발전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나라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아이들 말 대로 금니까지 뽑아서 팔아야 할 정도란 말인가.

이즈막 가게 입간판 문구 내용을 대할 때마다 삶에 허덕이는 빈자(貧者)의 모습이 그것에 겹치곤 한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요즘, 지난날 치과치료를 받은 금니마저 뽑아 팔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은 없는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주변을 살펴서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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