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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사 개산 74주년 기념법요식 봉행

전국에서 사부대중 1천여 명 참석
문덕 스님, "구제중생 원력 더욱 공고히 다져야"

  • 웹출고시간2019.06.09 15:13:37
  • 최종수정2019.06.09 15:13:37

천태종이 단양 구인사 설법보전에서 '구인사 개산 74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 천태종
[충북일보=단양] 천태종 스님들과 불자들이 총본산 단양 구인사 개산의 의미를 되새기고 구인사를 개산한 상월원각대조사의 정신을 본받아 중생구제 원력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천태종이 지난 7일 오전 10시30분 단양 구인사 설법보전에서 '구인사 개산 74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도용 종정예하를 비롯한 종단 대덕스님들과 류한우 단양군수 등 1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했다.

이날 도용 종정예하는 "일체중생 구제의 자비 원력이 소백산에 빛나 정각의 도량이 열렸으니 한국불교의 위대한 새날이 밝았어라. 백년대계의 큰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한 해 한 해 높아가는 공덕의 탑을 보니 성현의 가르침 그 참뜻이 더해가는구나. 제행은 무상이나 정법은 불변이라. 하얀 연꽃 피워내는 일승의 도리 참된 길을 교시하신 그 길을 따라 대중들이여, 깊은 믿음과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개산의 거룩한 뜻을 시현하라"고 법어를 내렸다.

이어 총무원장 문덕 스님은 기념사를 통해 "상월원각대조사께서는 이 자리에 초가삼간을 지으시고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라 명명하시어 1945년 단오일에 산문을 여셨다"며 "그로부터 74년이 지난 오늘 소백의 연화성지는 수수만만의 중생이 귀의하는 대도량이 됐고 개인의 복락을 증명하고 오탁악세를 제도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구하는 정진의 열기도 가득하다"고 구인사 개산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 "오늘 우리는 제불보살님의 가피를 소리 높여 찬탄하고 상월원각대조사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억조창생 구제중생의 원력을 더욱 공고히 다져 나가겠다"고 다짐한 후 "천태불자들의 정진 공덕이 원만각행으로 회향될 때 이 도량의 광채가 하늘을 덮을 것이요, 오탁악세를 연화정토로 바꾸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류한우 단양군수는 축사에서 "구인사는 천태종 종도들의 근본 수행도량이자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정신적 귀의처"라며 "단양이 관광객 1천 만 명 시대를 맞은 것도 구인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구인사가 단양군에 있어서 자랑스럽게 여긴다. 앞으로도 국민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사찰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구인사 개산 74주년 기념법회는 총무부장 월장 스님의 사회로 △삼귀의 △찬불가 △반야심경 독경 △상월원각대조사법어 봉독(원로위원 도산 스님) △국운융창기원 △연혁보고(감사원장 진덕 스님) △법어 △기념사 △축사 △축가 △관음정진 △사홍서원 순으로 이어졌다.

단양 / 이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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