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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충북일보] 내가 아는 한 분은 고향이 황해도 해주라고 했다. 세 살 때 엄마 등에 업혀 황급히 떠난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다. 고향은 꼭 그곳의 정경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지는 곳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1∼2년, 길어야 3년에 한 번은 사는 곳을 옮겨 다녀야 했던 우리 아이들은 고향이 어딘지 잘 모른다. 친구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초등학교 입학한 시골을 고향이라고 했다가 때로는 아버지 고향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답한 적도 있단다. 명절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 고향이라며 찾아 간 기억 때문에 그렇게 답하였을 것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과 달리 큰 도회지에서 자란 사람은 고향이란 화제 앞에서는 입을 다문다. 고향이라는 말에 녹아있는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을 회색 시멘트 숲속에서 자란 경험으로 말하기에는 아무래도 머쓱해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고향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인식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는, 그래서 다소 비밀스럽기도 한 '자기만의 천국'이다.

내 고향은 먼 남쪽의 산골마을이다. 명절이 돌아오면 마치 성지순례처럼 고난의 길을 달려 고향으로 가곤 했다. 어느 해에는 열 시간이나 걸려 고향에 도착할 때도 있었다. 고향은 그렇게 힘들게 오가는 여정을 통해 더욱 진한 색으로 채색되어 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고향을 지키시던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자 고향의 느낌이 달라졌다.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고, 잠시라도 더 머무르고 싶었던 그곳이 요즘엔 전날 밤에 가서 다음 날 아침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나면 곧바로 떠나는 곳이 되어버렸다.

사실, 고향은 어떤 위치적 공간이 아니라 감정적 공간에 가깝다. 낯익은 산과 강, 두엄냄새 나는 고샅길을 지나 허름한 집, '삐걱'소리가 나는 반쯤 열린 대문의 모습이 고향의 실체라면, 저녁 무렵 마을 전체에 낮게 깔리는 매캐한 냄새, 뜨뜻한 온돌방 아랫목의 감촉,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던 마구간의 소, 나를 부르는 투박한 사투리에 대한 기억은 고향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진짜 고향은 젖비린내 나는 엄마의 품이거나 울음을 달래고 졸음에 겨워하던 할머니의 굽은 등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향엔 내 인생의 뿌리가 묻혀있고, 지금껏 겪어온 운명의 실마리가 숨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께렌시아'가 있다고 한다. 류시화 작가가 쓴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보지 않는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와 사람이 싸우는 투우장의 한 쪽,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구역이 있단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가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고 힘을 다시 모으는 곳, 그곳을 스페인어로 '께렌시아(Querencia)라고 한단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곳이고,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이고, 본연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기도 하단다. 이 '께렌시아'를 우리말로 옮기면 '고향'이란 단어에 귀결될 것이다. 고향은 누구나 힘들 때 비벼댈 수 있는 언덕이고 언젠가는 돌아가고픈 '꿈나라'인 것이다.

고향을 북한 땅에 두고 왔거나 댐의 깊은 물속에 잠겨 찾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실향민(失鄕民)'이라고 한다. 그들은 더 뚜렷하게 고향의 정경을 기억하고 있다. 비나 눈이 하염없이 오는 날이면 가슴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는 고향을 깨워내어 한 잔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삶의 허전함을 달랜다. 그들은 그렇게 고향에 다녀오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긴 여행을 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여행길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돌아갈 가족과 집이 있기 때문이고, 현재를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힘은 나만의 '께렌시아'에서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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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조길형 충주시장이 공익적 차원에서 시민골프장 조성 계획을 세우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싸진 골프장 요금과 관련해 시민들이 골프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인데, 갑론을박이 뜨겁다. 자치단체장으로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시민골프장 건설 계획을 어떤 계기에서 하게됐는지, 앞으로의 추진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부에 대해 들어보았다. ◇시민골프장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충주의 창동 시유지와 수안보 옛 스키장 자리에 민간에서 골프장 사업을 해보겠다고 제안이 여럿 들어왔다. '시유지는 소유권 이전', '스키장은 행정적 문제 해소'를 조건으로 걸었는데, 여러 방향으로 고심한 결과 민간에게 넘기기보다 시에서 직접 골프장을 만들어서 시민에게 혜택을 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충주에 골프장 많음에도 정작 시민들은 이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시민골프장 추진 계획은. "아직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의 노력을 들여 전체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볼 수 있는 시민의 공감을 확보했다. 골프장의 필요성과 대상지에 대해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이제는 사업의 실현가능성 여부를 연구하는 용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