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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

전 보은문학회장

 11월이 시작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말은 "김장 하셨어요?"란 말이다. 남자들까지도 그런 말이 오고 갈 정도인 걸 보면 겨울철 저장식품인 김장이 우리생활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

 나 역시 올해 주변 사람들보다 가장 늦게 김장을 담은 것 같다. 절임배추가 아닌 작은 아버지가 직접 가꾸신 배추와 무를 이용하다 보니 시간과 일이 많았다. 하루는 밭에서 배추를 따고 무를 뽑아 저장했고, 김장을 담기 전날은 배추를 절이고 마늘을 비롯한 양념을 준비했다. 드디어 11월 마지막 날, 새벽에 일어나 절인 배추를 씻고 갖가지 양념과 채소가 들어간 배추 소를 만들어 남편과 둘이서 김치를 담았다. 김치를 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김치로 채워진 여러 개의 통을 바라보니 뿌듯했다.

 지난해 4월이었다. 오랜만에 언니 둘과 만나 부모님 산소에 갔다. 세 자매는 산소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가져간 팩 음료수가 눈부신 햇살에 따뜻해질 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각자 반추하면서 우리 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 그 이야기 속에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그 해 11월 초순 몹시 추운 날, 어머니는 김장배추를 절여 놓고, 산통이 왔고 이후 내가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인 큰언니는 어머니가 절여 놓은 배추를 머리에 이고 먼 거리에 있는 냇물에 가서 씻었으며, 다시 이고 날랐단다. 그 배추를 이웃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대충 고춧가루와 소금을 풀은 물에 마늘과 생강 그리고 파를 섞고 그 물에 적셔 김치를 담았다. 언니의 손톱 끝은 다 달아 피멍까지 들었고, 고생하며 눈물을 섞어 만든 그 해의 김장은 정말 맛이 있었단다. 그리고 언니는 때가 되면 많은 식구의 밥을 지었는데 땔감이 청솔가지라 그 연기에 눈물과 콧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쌀 한 줌에 보리쌀을 넣어 지은 밥에서 막내를 출산한 어머니를 위해 쌀알을 고르려 해도 보이지 않아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집안일로 열흘 이상 결석하고 학교에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시어 언니는 울면서 엄마가 동생을 낳아 못 나왔다고 하니 선생님은 언니의 손을 잡으면서 "17살인 네가 이 작은 손으로 어머니 해박바라지를 했다니…." 말을 잇지 못하고 함께 울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탄생은 또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고, 많은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어머니는 큰딸에게 짐을 줘 미안했고 창피한 마음도 드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머쓱한 마음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망초를 뽑고 또 뽑았던 때가 떠오른다.

 김장김치는 예전에 비해 만드는 방법과 시기가 많이 달라졌고 핵가족에 맞게 김장을 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아직도 시골에는 형제자매들이 친정이나 시댁에 모여 많은 양의 김장을 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매년 500포기가 넘는 배추를 친정에서 김장하는 친구가 있다. 8남매의 장녀인 친구는 2박 3일에 걸쳐 배추를 뽑고 다듬고 절이고 버무리는데, 그렇게 김장을 끝내면 몇날 며칠을 앓는다. 그래서 내년에는 각자하라고 해야지 다짐을 하지만 김장철이 돌아오면 다시 반복된다고 한다. 그것은 친정 부모님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8남매가 먹을 양만큼의 배추와 무 등 김장 부재료를 심어 수확을 하고 자식들이 모두 모여 김장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친구네가 김장을 담는 날은, 어머니는 절편을 한 말 뽑고, 귤과 과일도 상자로 들여 놓고, 동네사람들을 위해 막걸리와 돼지고기 수육과 많은 찌개를 준비한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김장 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자식들이 다 모였네요." 하는 말을 부모님은 좋아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김장이 끝난 뒤, 친구는 동생들에게 김치 값을 톡톡히 받아 용돈도 얹어 어머니 손에 넘겨주신단다.

 이제 내 친구는, 사위를 보고 손녀딸도 있어 할머니가 됐는데 언제까지 친정식구들과 공동으로 김장을 할까? 아마 친정엄마가 살아계실 동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세대에는 자신이 주관해 그렇게 일을 벌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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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