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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청주YWCA사무총장

 한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자리를 떠난 여자를 쫓아온 남자는 여자를 끌고가서 벽에 밀치고 입을 맞췄다. 잘생기고 부자이기까지한 남자의 애절한 표정은 시청자로 하여금 '남자가 여자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끼게 한다. 게다가 감미로운 배경음악까지 등장한다. 여자의 손을 낚아채고 거칠게 밀어붙이는 것, 얼굴을 갑자기 상대 얼굴 바로 앞까지 가져다 대 여자를 놀라게 하는 것.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행위는 엄연히 데이트폭력이다. 이런 설정은 거의 드라마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시청자들은 이를 보면서 드라마 속 스토리에 빠져 남자 주인공의 이런 행동에 대해 데이트 폭력이라 느끼지 못한다.

 드라마 속에서 거침없는 행동으로 남자가 여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심쿵'하게 한다고 하는데, 현실에서 이렇게 하면 공포를 초래할 뿐이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드라마 속 데이트 폭력이 '낭만적이고' '설레는' 행위로 포장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현실로 돌아와보자. 지난 3월 부산에서 한 남성이 기절한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는 CCTV 장면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심각성이 사회에 알려졌다.

 최근 경찰청 통계자료를 보면 2016년 대비 2017년 데이트폭력 신고건수는 1만4천136건으로 전년대비 50.9%가 증가했다. 그 중 가해자가 입건된 경우는 1만303명으로 과거 3년전에 비해 23% 증가했다.

 충북지역의 경우 2017년부터 집계를 시작했는데 아직 수기로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고, 데이트폭력에 대한 개념과 유형이 다르게 접근돼 정확한 통계조차 알 수 없다.

 데이트폭력은 사랑하는 관계, 또는 친밀한 관계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다. 미혼남녀 뿐만 아니라 직장 내 남녀관계, 이혼후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폭언, 스토킹, 폭행도 데이트폭력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데이트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젠더폭력의 대표적인 범죄인 성폭력, 가정폭력과 달리 별도의 법률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은밀한 관계의 은밀한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돼 칼로 물베기란 말처럼 없었던 일로 지워지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를 곱디고운 얼굴과 부로 포장시켜 미화하는 드라마속의 스토리는 현실에 없다. 나쁜 남자류를 매력적으로 둔갑시키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왜곡된 남자와 여자를 학습한다.

 이러한 왜곡된 이미지는 실제 남자친구나 애인으로부터 통제 피해를 본 후에도 데이트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여성의전화'가 조사한 결과 이러한 남자친구나 애인의 행동 통제에 대해 여성응답자의 38.9%가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심지어 35.8%가 '아무렇지도 않았다'와 32.1%는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응답했다.

 피해 여성의 64.9%가 신고 없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피해를 본 후 신고했다고 답한 응답자 중 53.3%는 경찰이 사건처리 방식에서 사소한 일로 치부했다고 응답했다.

 나쁜 남자의 데이트폭력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 남자가 원래 착했는지의 여부는 관심없다. 사소한 일로 욱했다고,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고 사과하고 반복하는 그 행위, 그 행위가 문제이다.

 여자의 품행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는 관심없다. 당사자의 허락없이 몸에 함부로 손대고 강제하는 행위, 그 행위가 문제이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라고? 매력의 요소에 강압이나 폭력이 함께 있을 수는 없다. 문제는 문제이고, 범죄는 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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