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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

전 보은문학회장

올여름은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에, 농업인을 비롯하여 힘겨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얼마 후면 이 또한 지날 테고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최악의 여름으로 남을 것이다. 여름은 많은 식물들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며 푸름이 넘치는 계절로 내게는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성장하여 겪은 장마와 수해의 아픔이 공존하고 있다.

유년시절의 여름밤은 어른들에게는 하루의 노고로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되었다. 방은 덥고 답답하여 마당에 멍석을 깔고 가족이 옹기종기 앉아 얘기도 나누고, 꾸지람도 듣고 놀이도 하며 껍질 채 찐 감자와 옥수수를 먹곤 했다. 푸른 풀에 불을 붙여 모기를 쫓는 모깃불의 알싸한 냄새와 연기로 기침을 할 때도 있었고 누워서 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과 신비로운 은하수, 어둠을 밝혔던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원한 부채질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언제나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당이 아닌 방이란 것이 신기했다. 방으로 들어간 기억이 없는데 방에 누워 있는 것이 이상했다.

비가 오면 동네사람들은 물 구경 가자하였고, 둑길에 서서 힘찬 물살로 흐르는 황톳물을 구경하며 물의 수위를 이야기했다. 그 물에는 나무도 휩싸여 내려 왔고 항아리나 때로는 돼지도 떠내려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어느 곳에서는 집이 침수가 되고 소중한 자산이 떠내려 간 것이지만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말 그대로 구경을 하였다.

그러던 1980년과 1998년, 보은에는 집중호우가 내리고 큰 수해를 겪어야 했다. 두 번 다 둑이 터져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집 앞으로 물이 쏟아져 내려와 마을은 섬이 되었고 집집마다 침수가 되어 살림살이가 엉망이 되었다. '80년에는 인명피해도 많았고 보은읍 소재지가 침수되어 상가의 쓸 수 없는 물건들이 도로에 쌓여있었으며 보청천에는 빨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가정이 대부분 푸세식 화장실로 보은읍내에는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98년에는 '80년보다 더 비가 많이 내렸다. 보은읍 죽전 둑에서 계속 모래포대를 쌓으며 지킨 결과, 다행히 보은읍소재지는 침수가 되지 않았지만 그 외 지역은 '80년보다 피해가 컸다. 공무원인 내게도 피해를 입은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힘겨운 나날이 되었다. 이듬해까지 수해현장 출장과 민원파악, 수해복구 작업 감독, 등으로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고유의 업무는 야근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농경지가 유실된 농업인들은 생활보다 더 절박한 생계에 대해 걱정을 해야 했고 나 역시 그들처럼 지쳐가면서 수해 이듬해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건강악화도 있었지만 남에게는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들들에게 사소한 것에도 화를 내고 짜증내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명퇴를 결정하고 남편의 반대로 갈등도 겪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아도 후회는 없다.

그 이후, 내겐 빗줄기가 강해지면,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식탁이나 높은 곳에 올려놓고 욕조에 물을 받아놓으며, 주방에도 큰 양푼에 물을 받아놓는 습관이 들었다, 수해가 나면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물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집중호우로 인해 우리나라 곳곳이 수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그냥 그렇구나 했으나 그 이후 몇 년간은 텔레비전에서 수해 광경이 나오면 그 사람들의 아픔이 전달되고 내 기억이 되살아나 소리 내어 울었다. 지금도 일 년이면 몇 번씩 꿈을 꾸곤 한다. 비가 많이 내려 내 고향집이나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물이 들어 닥쳐 꿈속에서 동동거리며 무척 속상해 한다.

세계 곳곳에서 겪는 자연재앙은 우리 인간의 힘이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지 느끼게 되고 무분별한 자연훼손에 대한 경고 메시지란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에 순간순간 위기는 찾아오고 그로 인해 힘들어 하지만 끝내는 잘 극복하고 우린 또 다른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수해 당시 전국에서 몰려오는 봉사자들의 땀방울을 보며 끈끈한 삶의 애착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인생의 여정은 이웃과 늘 함께 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여름은 내게 산전수전을 겪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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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