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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섭

청주시 공보관실 팀장

신록의 푸르름을 느끼고 싶어 상당공원을 들렀다. 도심 속 공원이라 그런지 화단 위에 피어있는 노란 꽃들과 내리쬐는 햇살아래 그늘 깊은 나무들이 정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삶의 여정에서 잠시 벗어나 나무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도 여기 저기 눈에 띈다. 호국보훈의 달 유월을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공원 맞은 편 교통섬에서는 대형태극기가 맞바람을 맞으며 펄럭이고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웅장하게 솟아있는 도민헌장 탑이다. 그 뒤에 수줍은 듯 숨어있는 동상이 있는데 구한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청주출신 의병장 한봉수의 동상이다. 33승 1패, 유격전의 명수였던 그였으니 동상도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것일까. 길목에 몸을 숨겨 기다리고 있다가 성난 매의 눈을 하고 한순간 달려드는 한봉수의 의병에게 일본군은 저항도 못해보고 속수무책 당했으리. 짚신을 신고 화승총을 들고, 허리에는 총알과 수통을 차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는 동상 앞에 서니 숙연함이 느껴졌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벤치에 앉아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신록을 즐기고 있는데 젊은 사람 두 명이 동상 앞을 지나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저 동상 누군지 알아?", "모르겠는데." 한 여자가 동상 앞으로 다가가 비문을 읽은 후 이렇게 말한다. "한봉수 의병장이래. 싸움을 잘했나봐.", "어렸을 때 부모님 속 꽤나 썩였겠는 걸", "나중에 우리애가 의병장 한다면 나는 반대야.",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한봉수는 어느 시대 사람이지?", "글쎄, 조선시대 사람 아닐까? 임진왜란 때 의병이 많았다던데…"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나는 말없이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번개대장 칭호를 받으며 일본군과 목숨 바쳐 싸웠던 의병장 한봉수가 젊은 두 사람에게는 그저 싸움만 하고 부모님 속만 썩이던 골칫덩어리 아들 정도로 치부되고 있었다. 6·25 전쟁에 참가했던 노병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유월은 희망찬 달이다. 녹음방초가 우거지고 일 년 중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잊어서는 안 될 역사가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로운 일상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조상들의 뜨거운 희생위에 꽃처럼 피어난 것이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아픈 역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점점 흐려져 가고 있다. 이틀 후면 현충일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충렬(忠烈)을 기리는 날이다. 그리고 6.25 전쟁이 발발한지 68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은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게 큰 아픔이었다. 비록, 전쟁의 상처는 잊는다 하더라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의 영웅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애국이다.

퇴근 무렵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역에 사는 국가유공자들에게 감사패를 드려야겠는데 문구를 써달란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참을 망설인 끝에 이렇게 적었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뼈 속 깊이 느꼈기에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지셨습니다. 오늘날 빛나는 대한민국은 정녕 님의 분신입니다. 힘든 역경 이겨내고 다시 맞은 유월이여, 붉은 장미 한 다발로 정성스레 기립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과거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실패의 역사를 기억하고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더욱 중요하다. 조상들이 살아온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이고, 민족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전적지라도 찾아야겠다. 그리고 조국의 어둠을 밝히고자 맨몸을 불사르다 초연히 우리 곁을 떠나가신 그 분들께 붉은 장미 한 송이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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