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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낮에는 보기 힘든 여고생들이 한바탕 우르르 지나간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일찍 귀가하는 중인가보다. 한창 아름다움을 발산할 나이에 있는 아이들은 화장을 안 해도, 교복만 입어도 예쁘다. 웃음을 주렁주렁 달고 즐거워하는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참, 좋을 때다"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처음 다녀온 '구 충주여상' 동문체육행사를 떠올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간 모교다. 운동장 가의 꽃과 나무도 환영해 주는 듯 바람에 살랑이고 있다. 조금은 변한 듯한 교사(校舍)를 눈으로 둘러보며 마음은 순식간에 39년 전 여고생으로 돌아간다.

여상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마음으로 고입 진학을 꿈꾸던 학교였다. 실업계 고등학교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인근의 음성, 괴산, 제천 등에 사는 친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입시를 치렀다. 그래서일까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서 입학한 우리들은 스스로 자랑스러운 학교라고 자부심도 대단하였다.

벅찬 마음으로 몇 명의 동창들과 만났다. 대부분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다. 강산이 몇 번이나 지났지만 친구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그대로다. 우리는 만남의 반가움을 가슴에 담으며 행사장인 '한림관'으로 갔다.

행사장 주변에서 만나는 선. 후배들이 정다웠다. 접수를 마치고 강당 안으로 들어가니 후배들이 양쪽으로 서서 손뼉을 치며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아닌가. 영화제 때 배우가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하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조금 얼떨떨했지만 자랑스럽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 그지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동문 전체가 한자리에 앉아 1부 행사인 개회식을 하였다. 지금은 '한림디자인고'로 이름이 바뀌었고 올해로 개교 53년이 되었단다.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들은 사회 곳곳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주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부르는 교가는 선·후배와 끈끈한 정을 이어주었고 동지애 같은 강한 애정을 느끼게 하였다.

개회식이 끝나고 우리 동창은 노천강당(露天講堂)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학교의 큰 행사를 치렀던 곳이다. 교내 합창대회도 하고 각종 공연이 열리던 장소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며 정을 나누기도 했던 추억의 무대였다.

우리는 동창회장이 마련해 주었다는 노란 점퍼를 단체로 입고 연녹색의 잔디밭에 수를 놓듯 앉아 깨알 같은 추억을 쏟아 냈다.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의 말에 자세를 바꿔가며 우리들은 여고생으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합창대회 때 불렀던 '등대지기'와 '아리랑 목동' 노래도 하였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음정, 박자, 가사까지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2부 행사에 동문이 다시 모였다. 명랑 게임으로 청·백 양 팀으로 나뉘어 체육행사를 하였다. 훌라후프 돌리기를 첫 게임으로 시작하여 청·백 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승부가 걸린 것이라서 모두 최선을 다했다. 게임이 시작할 때마다 벌어지는 양팀의 응원도 볼만 하였다. 우리 기수는 소고를 이용해서 시선을 끌고 두 친구가 남, 여 교복을 입고 전체 분위기를 선도하였다. 선·후배가 어우러져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며 즐겁게 지내는 동안 모든 동문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선한 얼굴을 가슴 뭉클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내가 그 속에 있음이 자랑스러웠다.

여학생들의 웃음 속에 친구들의 얼굴이 스친다. 가정과 사회를 이끌며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며 살아온 노천강당 친구들, 서로 배려하며 나누는 우정이 오월의 신록 앞에서 눈물겹게 고마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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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