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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를 보면 살살 숨어 다녀도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데 등에 깃발을 짊어지고 뛰어가거나 별다른 무기 없이 부대 깃발 끝에 창을 꼽고 소리 지르며 뛰어가는 병사들이 나온다. 내가 적군이라도 부러울 만큼 현란한 색을 가지고 있고 어디서나 잘 보이는 멋진 마크에다가 혹 안보일까 하여 높기까지 하다. 전투 부대에서 부대의 기는 부대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통수권자의 표창이 있을 때면 부대 깃발도 함께 표창을 대에 매단다. 그만큼 깃발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함은 물론이고 부대원이 가는 곳에는 가장 먼저 등장하는, 개개인을 넘어서는 무리에 대한 상징이다.

부대를 상징하는 깃발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는 다양한 상징의 기가 있다. 간단하게는 '산불조심' 깃발부터 1970년대부터 '새마을운동' 깃발, 국경일이면 도로 곳곳에 게양하는 태극기가 있다. 가끔 '태국기'로 생각하는 오타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오타 내용은 태극모양의 국기라고 태국기라 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깃발은 존재 하였으나 국기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왕의 행차에는 쌍룡의 기를 세워 왕의 통치를 알렸고 다양한 음양오행의 기를 세워 통치의 방법이 우주질서를 따른 다는 것을 상징시키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기에 대한 필요성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여러 나라들과 국교를 맺게 되자 국기에 대한 필요가 생겼다. 현재 태극기의 시효는 1882년 박영효 수신사가 일본으로 갈 때 처음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으로 가는 메이지마루(明治丸) 배 안에서 박영효가 국기를 그려 보이며 영국 공사 애스턴과 선장 제임스의 의견을 들어 팔괘가 그려진 기를 사괘로 정리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태극기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1875년 강화도 초지진에서 있었던 운요호와의 전투 때문에 개방을 강요당해서다. 무기의 발달이 늦었던 조선의 화포기술은 일본 운요호에게 두들겨 맞고 강화도 조약까지 체결하게 되었다. 운요호사건은 멋대로 강화도 인근까지 와서 측량작업을 하던 일본군함 운요호에게 경고사격을 하던 것이 빌미가 되어 전투로 확대되었고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약을 맺게 된다. 조선 항구 두 곳의 개방, 해안의 측량, 조선에 거하는 일본인들은 조선법에 저촉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약에 명시했다. 이후로 조선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수많은 열강들과 조약을 맺게 된다. 다른 국가들에 국가에 대한 신호를 주기위해 다른 나라들처럼 국기 사용이 필요했던 것이다.

태극기의 태극은 우주만물의 근본인 음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주의 모든 것의 생성과 사라짐, 번영의 의미가 있다. 개별적으로 나누어져있으나 상호 의존을 뜻하며 이것은 상생과 조화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다. 태극기는 어릴 적 애국가가 나올 때면 멈춰 서서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 되는 숭고한 대상인 동시에 비 오면 얼른 개서 넣어야하고 절대 빨아서는 안 되는 나라의 상징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법관에 의해 파면을 받았고 구속이 되었다. 구속에 반대하는 집회시위자들은 태극기를 들고 탄핵 반대를 주도하고 있다. 그들의 행동으로 태극기집회라는 명칭으로 알려졌으며 법치국가를 부정하고 헌재판단을 부정하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로 인해 태극기가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임에도 개인 혹은 단체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다. 3·1절 국경일 행사 때 많은 시민들이 태극기를 가지고 행사에 참여를 하면서 태극기 집회자들과의 차이를 주기 위해 국기봉에 노란 리본을 하기도 하였고 성조기를 들고 서로 간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태극기의 본뜻은 나뉘어져도 함께 섞여있는 상생을 뜻하는 것이다. 국기는 한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며 한 국가 내에서 상생과 화합의 뜻한다. 미국의 은혜는 잘 알겠지만 미국의 상징을 지구 반대편의 국가 사람들이 들고 흔드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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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 희망리더 - 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최고의 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장부식(58)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최고'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기업인으로서 '치열한 길'을 밟아왔다. 장 대표는 2002년 12월 동물·어류·식물성 '저분자 콜라겐 펩타이드' 제조 업체인 씨엔에이바이오텍을 설립했다. 1980년대 후반 화학관련 업체에 입사한 이후부터 쌓아온 콜라겐 제조 기술력은 그 당시 이미 '국내 톱'을 자랑했다. 씨엔에이바이오텍이 설립되던 시기 국내 업계에선 '콜라겐'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콜라겐은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성분으로 주름을 개선하고 관절 통증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장 대표는 '콜라겐을 녹이는' 특허를 냈다. 고분자 상태인 콜라겐은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다. 인체에 쉽게 흡수될 수 있도록 저분자화, 쉽게 말해 '녹이는' 게 기술력이다. 장 대표는 콜라겐과 화장품의 관계에 집중했다. 화장품은 인체에 직접 닿는다. 이에 콜라겐을 쉽게 흡수시킬 수 있는 것은 화장품이라고 결론내렸다. 장 대표는 "2005년 말께부터 '보따리 짊어지고'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당시 어류에서 콜라겐을 추출하는 기술을 갖고 1년에 15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