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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희

수필가

성미 급한 봄이 살바람 뒤를 따라온 모양이다. 미적대던 겨울이 한달음에 꽁무니를 내뺐다. 그 덕에 겨우내 말랐던 나뭇가지에 통통히 물이 오르고 양지바른 둔덕에 새순이 고개를 든다.

연초록 순은 봄 나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진솔 교복을 입은 중학생도 파릇파릇 새싹이다. '일학년'이라는 말과 '처음'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일까. 무리 진 아이들 곁을 지날 때면 비릿한 풋내가 코끝을 스친다. 가끔 제 몸피보다 큰 옷을 입은 남학생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리바리한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워 서다.

새 교복을 입은 꼬두람이의 어깨가 기역자 모양이다. 하루 밤새 어른이라도 된 듯 우쭐한 마음이 들어서 일까. 아니면 선배들의 매서운 군기에 졸아서 그런 것일까. 낙낙한 윗도리와 살망한 바지를 추어올린 일학년 아이들은 덩치가 커도 애잔하고 불안하다. 행여 여린 싹들이 차가운 봄바람에 움츠러들까 자꾸 마음이 쏠린다.

풋풋한 아이들을 보니 사십여 년 전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중, 고등학교 때 새 교복을 입은 적이 없었다. 맨드리 할 줄 몰랐던 중학교 때는 뒷집 언니가 물려 준 펑퍼짐한 교복을 입고 다녀도 창피한 줄 몰랐다. 하지만 한창 멋을 부리고 싶은 여고 일학년은 달랐다. 허리 옆선이 초승달처럼 날씬하게 휘고, 미끈한 종아리가 보일 만큼 짧은 여고 교복은 입으면 제법 옷 태가 났다. 나도 맵자하게 차려입고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도 빛바랜 옷을 입었다. 친구들은 걸대에 맞게 양장점에서 맞춰 입거나 기성복 업체에서 사이즈에 맞는 교복을 사 입었다. 체구가 작은 나는 물려받은 옷마저 몸에 맞지 않았다. 웃옷은 어깨선이 한 뼘은 내려와 축 처졌고, 치마는 어른 주먹이 들어가도 남을 만큼 컸다. 허리춤과 앙가슴으로 시린 바람이 숭숭 지나갔다.

겨울이 되자 친구들은 교복 위에 까만색이나 검푸른 색 코트를 입었다. 교복보다 갑절이나 비싼 코트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3년 내내 얇은 옷을 서너 벌씩 껴입고 맵찬 겨울을 버텼다. 몇 해 전, TV에서 펭귄을 보았다. 항아리같이 둥근 몸과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한겨울 추위에 잔뜩 웅크리고 다녔던 여고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던 거다. TV를 보는 내내 그때의 추운 겨울이 생각나 오소소 한기가 들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천둥벌거숭이 아들을 데리고 동네 양복점에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3년을 입을 만큼 헐렁한 웃옷과 한 뼘은 접어 올린 바지라야 진정 새 교복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저씨, 몸에 딱 맞게 해 주세요."

"아니, 어머니 이제 일학년인데 좀 넉넉해야 삼 년을 입히죠."

"아니에요, 작아서 못 입으면 내년에 다시 맞출 테니까 걱정 말고 몸에 딱 맞게 해 주세요."

양복점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들의 몸 여기저기를 줄자로 쟀다. 아무 생각 없이 줄레줄레 따라온 녀석은 심드렁하게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무심한 녀석 옆에 서 있는 내 마음만 괜스레 들썽거렸다. 가봉하러 가던 날, 풀썩 웃음이 나왔다. 날씬한 허리를 강조하지 못한 한풀이를 아들한테 하는 것 같아서였다. 드디어 교복이 만들어졌다. 새 교복을 입은 아들은 깎아놓은 밤톨처럼 야무져 보였다.

어디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양복점 아저씨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일학년 때에 맞춘 교복을 아들은 삼 년 내내 입었다. 키 작은 어미를 닮아 아들 녀석도 쑥쑥 크지 않았던 거다. 어미가 어떤 마음으로 양복점에 갔는지 십 수 년이 흐른 지금도 아들은 헤아리지 못하리라. 결핍의 쓰라림을 모르면 풍요의 고마움도 모를 터이니.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새살거리며 지나간다. 차가운 바람이 불자 보송한 얼굴 위로 와르르 소름이 돋는다. 날리는 머리카락 따윈 아랑곳없이 까르르 웃는다. 키 작은 여학생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해반지르르한 얼굴이 어여쁘다. 열일곱 살 때 내 모습도 저러했을까.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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