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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예년과는 달리 강추위가 몰아치고 눈발마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흩날리는 소슬한 연말이니 훈훈한 옛날 얘기 하나 해 볼까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자, 전국은 북의 도발을 경계하며 바싹 얼어붙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며칠 동안 숨죽이던 모두는 염려하던 극한 상황이 한반도를 비껴가자 태평성대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3김이 노래하는 '서울의 봄'을 즐기며 화사한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꾸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습니다. 신군부가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를 무참하게 짓뭉개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지요. 세상은 다시 얼어붙었고, 서울의 봄을 노래하던 모두는 시래기처럼 축 늘어진 채 침묵했습니다.

이후 상황은 신군부의 각본대로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12월 12일 밤을 기해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고 중장으로 재빨리 올라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꿰차더니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빌미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더군요. 이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그럴 듯한 이름의 초권위를 지닌 단체를 만들더니 자신이 상임위원장이 되어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동토가 되어 얼어붙은 채 침묵하고 또 침묵했지요. 운동권마저 삼청교육대가 의식되어 제대로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직장생활 초년병이던 필자가 친구들과 함께 옛 남궁병원 옆 골목에 있던 닭 내장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을 들른 것은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되던, 밤 10시 이후의 통행이 제한을 받던 때였습니다. 우리는 닭 내장 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며, 이 땅을 끝 간 데 없는 동토로 몰아가던 계엄사령부의 서슬 퍼런 포고 내용이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입에서 입으로 은밀하게 전해져 우리의 귀에까지 들어왔던 저들이 유언비어라고 단정했던 소문 등을 목소리를 죽이며 소곤거렸습니다. 역(逆)으로 흘러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의 물길을 옳은 길로 돌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한 채 그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통금 안내 사이렌이 울리는 10시를 넘겼습니다. 걱정이 된 주인이 자고 갈 것을 권했지만 친구들 모두가 집에 전화조차 없던 가난뱅이 시절이어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울 부모님을 생각하며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금을 위반하면 20일 정도의 구류에 처해진다는 풍문을 들은 바 있어 몸은 한껏 졸아들었습니다. 가끔 군용 트럭이며 지프차가 휑하니 뚫린 어두운 공간을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더군요. 같은 방향에 집이 있는 친구와 둘이 그림자처럼 움직여 모충교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골목을 막 벗어나려는데 검은 그림자 둘이 앞을 막아섰습니다.

"누구야·"

자세히 살피니 전투복 차림의 두 명의 경찰관이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그만…."

"이거, 정신 나간 친구들 아냐·"

곧바로 연행되리라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습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울 가족들의 모습 또한 뇌리를 스쳤고요. 잠시 둘이 수군수군하더니 둘 중의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이보게. 모충교로 가면 지금 계엄군이 지키고 있으니 무심천 하상으로 내려가 물길을 건너뛰도록 해."

아,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감도는 잔혹한 거리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사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는데도 옛 모충교 옆을 지날 때면 그 때의 장면이 고스란히 훈훈한 추억으로 되살아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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