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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삶의 길을 묻다

들꽃처럼 손잡고 떠난 사제동행 인문행성

  • 웹출고시간2017.11.08 20:50:26
  • 최종수정2017.11.08 20:50:26

블라디보스톡 항구의 금각교

[충북일보] 이상설, 조명희, 최재형…. 교과서에서 익숙한 이름들이지만 청소년들에게 그 삶은 역사의 책갈피에 박제되어 있었다. 하여 만물이 자신의 안으로 힘을 모으는 깊은 가을, 도내 중학생들도 우리 고장 출신 역사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내적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이 연수를 위해 학생들은 진천 조명희 문학관과 이상설 선생의 생가를 사전답사하기도 했고, 학교의 역사문화 탐방 프로젝트 선발대의 임무를 띠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2017년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의 여정으로, 14개 학교 70명의 중학생들과 교사들은 러시아 연해주 북국의 시린 벌판, 항일 독립의 강인한 의지와 한인 이주민들이 불굴의 삶을 펼쳤던 그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문장처럼 긴 이름은 서로 잊지 않으려고 스스로 이야기가 되었다.

<중략>

이름 속에 기타줄이 있어 울리는 것이다.

이름 속에 어쩔 수 없는 춤사위가 있는 것이다.

인솔 단장 윤석위 시인의 '이름'이란 시에서처럼,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조국애란 공통분모로 하나의 긴 이름이 되었고 역사가 되었다. 그들의 이름 속에 울리는 애국의 선율, 충정의 춤사위는 1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이 몸담았던 그 공간에 그대로 어른거리고 있었다.

"올해 처음 실시된 러시아 '사제동행 인문행성'은 교학상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제간 인문으로 행복한 성장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충북 역사 인물들의 발자취를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성찰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모색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충청북도교육청(교육감 김병우) 과학국제문화과 지선호 장학관의 프로그램 운영 취지에 대한 설명이다.

조명희 문학비 앞의 학생들

블라디보스톡 항구의 조명희 문학비, 시를 낭송하는 밤

독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블라디보스톡항은 멀리 희미한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 비가 함께 흩뿌렸다. 사슴뿔이라는 의미의 금각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 시 건설되어 항구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항구답게 역동적인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날씨 탓인지 쇠락한 제국의 여운이 떠도는 듯했다. 전망대 뒤쪽 조명희 문학비가 서 있다. 노동자 농민의 핍진한 삶을 절절히 그려냈던 민중문학의 대가, 결국은 소련의 억압 정책에 총살당한 조명희…. 그의 삶과 이상은 이제 그저 네모난 비석으로 추념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전에 '낙동강' '땅속에서' 등 그의 작품을 읽고 간 아이들은 포석(抱石)이란 그의 아호처럼, 그 단단한 돌 안에 그가 썼던 뜨거운 언어들이 내장되어 있음을 알 것이다. 조용히 문학비 앞을 서성였던 그 시간, 바람은 차가웠지만 젖은 낙엽과 포석(鋪石) 사이로 돋아난 이끼로 바닥은 푹신했다. 그 문학비 앞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던 그의 문학 정신을 온몸으로 체현했음을, 후일 아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시가 있는 문학의 밤, 경덕중학교에 재학 중인 고려인 막심 학생이 러시아 국민시인 푸슈킨의 시를 읊고, 이에 화답하듯 용암중 허 훈 학생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낭송하여 박수를 받았다. 블라디보스톡 골목의 밤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얼굴에 윤동주가 다 못 헤인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신한촌 기념비 앞의 연수단

신한촌기념비와 고려인 역사관

대기는 맑고 바람은 차가웠다. 이곳에 정착한 선조들의 결기가 느껴지는 날씨였다. 1864년 함경도 경흥의 13가구가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이래 가난한 농민들이 연이어 연해주로 들어왔다. 그 한인마을을 기념하는 신한촌 기념비 앞에 섰다.

신한촌 기념비의 관리실에서 아이들은 의젓하게 방명록에 자기 이름을 기록했다. 열악한 관리실 환경이 안타까웠다. 안중근 의사를 닮은 고려인 관리인이 손짓 몸짓으로 이곳의 의미를 설명한다. 왼쪽 탑은 북한, 가운데는 우리 5천만 국민, 오른쪽은 해외동포를 뜻한다고 한다.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솝 여사는 명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연해주나 만주의 한인들을 보면 조선인은 본래 강인하고 성실하다. 본토의 조선인이 궁핍한 것은 탐관오리가 득세하고 정부가 무능한 탓이다. 나라가 제 기능을 한다면 조선은 나중에 일본보다도 더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는 우리 한인 이주민들이 동토의 땅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삶을 개척해 나갔는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특히 스탈린의 소수민족 탄압정책으로 한인 17만여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역사는 뼈아프다. 한겨울 화물칸에 가축과 함께 실려가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 현장 우수리스크의 라즈돌리노예역을 찾았다. 마침 기차가 역에 들어오며 사라져가는 모습을,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아이들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극한의 날씨 속에 짐승 취급을 당하며 끌려간 선조들의 고통을 체감하는 것이리라.

고려인 역사관을 들어서니 먼저 정원 한 켠에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역사관은 문화센터의 역할도 하고 있어 고려인 뿐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많이 눈에 띄고, 자연스레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에 활기가 느껴진다.

역사관 부근에 러시아 정부가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살았던 집도 있다. 집은 기념관으로 한창 조성 작업 중이었다.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도운 인물로서 당시 '최페치카'로 불렸고, 연해주 한인들의 삶과 독립운동에서 대부와도 같았던 인물이다. 국내에서 11월 말쯤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안중근이 끝까지 지킨 그 이름, 페치카'도 상연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상설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수이푼강

이상설 선생의 유해가 흐르는 수이푼강

초겨울의 억새가 흔들리는 수이푼강에 저물녘의 해가 설핏거린다. 수이푼 강가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 학생들은 고개를 숙였다. 헤이그 밀사로 활약했으나 국권 회복의 꿈이 좌절되고, 이국의 땅을 떠돌며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선생은 끝내 이곳에서 병을 얻어 눈을 감았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기필코 조국 광복을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라는 유지를 남긴 선생은 수이푼강에 유해를 뿌릴 것을 당부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고국산천에 묻히지 않고 이곳의 강물로 흐르겠다는 마음은 후손들에게 독립에의 강한 의지를 불어넣으려 함이 아니었을까. 강가의 풍경을 열심히 사진에 담는 아이들의 눈빛과 가슴에 선생의 넋이 담긴 수이푼 강물이 흘러든다. 그의 신념과 조국애도 그대로 흘러들 것이다.

선생의 유허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발해성터의 드넓은 초지가 자리잡고 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끝없이 장쾌한 광경에 아이들의 시선은 더욱 넓어지고 멀어지며 활짝 열린다.

우초스 전망대의 아무르강

아무르강가에 서서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거리에서 최재형 선생 생가 찾기, 러시아 음식문화 체험하기, 시민들과 간단한 대화 나누고 사진 찍기 등의 미션이 학생들에게 주어졌다. 잠시 역사의 무거운 현장에서 벗어나 아이들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모든 과제를 생동감 넘치게 수행해낸다. 무기박물관에서 우리 일행은 북한의 고위 관료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잠깐 스쳤다. 김정은의 핵 위협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그들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저녁식사 후, 하바롭스크로 가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다. 처음으로 객실 단위의 열차를 탄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타 학교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의 문을 연다. "사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는데 물도 안 나오고 좁아서 밤을 보내기가 어려웠어요. 이 정도 환경에서도 힘들었는데 화물칸에 실려 강제 이주된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 고충이 실감났어요."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하여 열차에서 내린 용암중 1학년 함대성 학생의 말이다.

하바롭스크의 명소 러시아 향토박물관과 그리스정교회 앞, 아무르 강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몽골과 중국을 거쳐 러시아 오호츠크해로 흘러드는 이 강을 왜 국내외의 시인들이 서로 다투어 읊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우초스 전망대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는 듯 아무르 강을 가없이 바라본다.

하바롭스크 언덕 밑 저 아무르

북빙양 찬 바람의 추위를 받아

가만히 누워서 새 날을 기다리니

조명희 '아무르를 보고서'

아이들은 조명희 선생이 되어, 이상설 선생이 되어, 그리고 그들의 넋이 담긴 새로운 자신이 되어 아무르를 바라본다. 바다와도 같이 크고 넓은 아무르강…, 아이들이 힘차게 써내려갈 미래의 시간들이 강물 위 햇빛으로 반짝인다.

글·사진=박미선(용암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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