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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미국 워싱턴시의 가장 붐비는 어느 지하철역 근처에서 한 청년이 허름한 차림으로 사뭇 진지하게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이 바쁜 도시의 사람들 대부분은 청년에게 조금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바쁜 걸음으로 무심하게 지나칩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바이올린 연주를 잠시 지켜보다 그 자리를 떠납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지하철역의 쓰레기통 옆에서 연주를 한 청년은 바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30억 원에 이르는 가치를 지닌 고가의 바이올린으로 40여 분 동안 최선을 다해 멋진 연주를 했지만 바이올린 케이스에 모인 돈은 고작 3만5천 원이었다는군요. 그 당시 현장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은 단 1초도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바쁘게 지나쳤던 것입니다. 모두는 자신의 일상에 취해 세상에서 가장 재능이 있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코앞에서 훌륭한 연주를 하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실험자들에게 선수들이 빠르게 농구공을 주고받는 동영상을 보여 주며 몇 번을 패스하는지 세어 보라고 지시하면, 실험자들은 선수들의 빠른 패스를 헤아리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바로 그때 큰 고릴라 한 마리가 화면 오른쪽에서 나타나 천천히 걸어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중간쯤에서 가슴까지 두드리고는 서서히 왼쪽으로 사라집니다.

이 실험에서 5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는군요.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겠지요. 자신에게 필요한 '선택적 지각'만을 하는 것입니다. '선택적 지각'은 부분적인 정보만을 받아들여 성급히 판단함으로써 상당한 오류를 범하기 마련이지요. 때문에 종종 핵심을 놓쳐 버리기 일쑵니다.

'파락호(破落戶)'라는 흔히 사용되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이지요.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그는 의병장 곽재우를 도와 의병활동을 고무하였을 뿐 아니라, 함양·거창·합천 등지를 돌며 의병을 규합하였으며, 관군과 의병 사이를 조화시켜 전투력을 강화하는데 노력한 훌륭한 분입니다.

이 분의 13대손인 김용환이 바로 유명한 파락호였답니다. 그는 노름행각으로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 이십여만 평, 현재 시가로 약 수백억 원의 재산을 모두 거덜냈다는군요. '사방으로 십 리를 걷더라도 남의 땅을 밟지 않을 만큼 넉넉한 재산을 십 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모두 팔아치워 가문이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후손은 증언합니다. 심지어 그의 외동딸은 아버지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혼수가 없어 시댁의 돈을 얻어 시집을 갈 정도였다는군요.

그런데 이 유명한 파락호가 만주에 있는 독립군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댄 독립투사였음이 사후(死後)에 밝혀졌습니다. '요시찰인물'인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독립자금을 대기 위해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행세했던 것이지요. 파락호로서의 삶은 왜경의 눈을 피하기 위한 위장술이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대로 모두 진실일 순 없습니다. 때론 숨겨진 진실이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물합니다. 세상일은 파보면 파볼수록 경이롭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겐 '선택적 지각'이 아닌, 깊은 곳에 도사린 속살을 발라내는 슬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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