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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

용암중 교사

100세 생일을 앞두고 요양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 노인이 있다. 스웨덴 작가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주인공 알란은 슬리퍼와 파자마 차림 그대로 생일 파티가 시작되기 직전, 창문을 넘어 요양원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만약 그가 요양원에 있지 않고 가족과 함께 화목한 가정에 살았더라도 도망쳤을까. 집이었다면 아마 자식과 손자들에 둘러싸여 기꺼이 100세 장수의 축복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주인공 알란 노인은 폭력배도 제압할 정도로 근력과 원기가 젊은이 이상이다. 알란은 요양원을 나와 여러 모험을 전전하고 극적인 경험을 쌓는 와중에 친구들을 사귀며, 결국 파라다이스와도 같은 남태평양의 섬에 좋은 친구들과 정착하게 된다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소설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이다. 장수시대라 하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유병장수' 시대를 살고 있다. 사실 소설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다. 100세 노인이 창문을 뛰어 넘어 발길 닿는 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극히 건강한 어르신도 있긴 하지만 코믹하고 유쾌한 소설의 설정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나의 외조모도 지금 아흔 다섯 되셨는데 거동을 거의 못하신다. 자식들이 번갈아 모시고 있는데 귀까지 어두우시니 거의 정물처럼 앉아 계시거나 누워 계셔서 '생활(生活)'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누구라도 노년의 삶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의학의 발전에 따라 노인으로서의 삶이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시기는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에 직장의 은퇴는 곧 삶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 주었다면, 요즘은 퇴직 후의 삶도 2, 30년은 너끈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도심 곳곳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요양원들을 보면 점차 노령화되는 사회가 절실히 피부로 와 닿는다. 수년 전만 해도 요양원에 계신 대고모 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 시골 외곽지역을 한참 헤맨 끝에 겨우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근래는 요양원이 거의 동네 병원처럼 우후죽순 많이 생겨나고 있다.

건강한 노년의 삶은 생의 마무리 차원에서 무척 중요하다. 여기에는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도 숨어 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풍습이나 사회 분위기로 인해 노인들의 일자리도 극히 제한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 영역을 어떻게 넓혀가야 할지도 과제다.

한 예로 외국 항공을 이용하다보면 승무원의 연령층이 꽤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항공사는 20대 여성 일색인데 비해 외국 항공은 4, 50대는 물론 은발의 할머니도 더러 있었다. 그분들의 서비스는 왠지 더 푸근하고 정겨운 느낌이었다.

내 부모님도 여든이 가까워지는 나이시지만 여전히 일자리를 갖고 싶어 하신다. 경제적 문제보다 사회적인 일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시는 것 같다. 우리 남매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부모님은 단독 주택에 사시는데,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여유 공간이 많다 보니 덩치 큰 물건들이나 당장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부모님 댁에 갖다 놓고 쓸 때가 많다. 부피가 큰 겨울 이불이나 카페트, 여행 가방, 텐트, 아이들이 쓰던 작은 악기와 새장 등 우리 남매들이 번갈아 이런 물건을 지하실이나 빈 방에 갖다 놓으니, 어느 날 어머니는 이런 말씀으로 더 이상 물건들을 받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셨다.

"퇴물들만 산다고 퇴물만 갖다 놓는 것이냐!"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자신들조차 쓸모없어진 물건처럼 취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조 섞인 말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부모님 안 계신 시간을 틈타 남은 자동차 타이어 하나를 이층 옥상 건물 틈에 굴려놓고 나올 때는, 도둑질이라도 한 심정이 되어 도망치는 뒤통수가 따가웠다. 그러면서 귀찮은 물건들만 갖다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주 찾아뵙고 산책과 대화도 많이 하리라 생각하며 자기 위안을 삼았다.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99세에 첫 시집을 냈던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저금'이란 시다. 결국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배려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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