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9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 간사

꽉 끼는 바지를 당기듯 긴 겨울을 지난 산은 한 점 두 점 초록잎을 아랫도리부터 가려 올려 갔다. 추석이 지나고 여기저기에서 알록한 스웨터를 입듯 산은 다시 꼭대기부터 물들기 시작했다. 그 초록과 단풍이 지나면 한 해가 또 저물고 무채색의 나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산은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그 자리에 묵묵히 지켜서 보고 있었다.

작년에 대대적으로 쳐낸 가로수는 다시 제법 컸다. 그러나 올해는 톱질을 당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벌써 은행알을 떨구는 녀석들도 있다. 무심코 그것을 밟기라도 하면 그 역한 구린내에 질색팔색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벌써 가을은 옴팡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오래된 도심 한복판에 버티고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이 그것이다. 2년 전에 충주시에서 매입한 후 그 운명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철거해야 한다는 쪽과 복원·보존해야 한다는 쪽의 논리가 팽팽했다. 올해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지정신청을 통해 살아남기는 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며 그것의 활용 방안을 놓고 물밑 작업이 진행됐다. 충주시립미술관으로 만든다는 것이 충주시청의 입장이라고 한다.

여름을 지나며 녀석의 수난도 계속되었다. 지난해 걷어낸 겉치레 뒤에 여름 비에 여기저기 얻어터져 벽체에 넣은 나무가 드러났고, 별채의 지붕은 방치되었었기에 그대로 비를 맞았다. 그러다가 지붕 아닌 지붕을 하나 얹고 여름을 나고 가을을 맞아 울타리 안에 갇혀 또다시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녀석은 1933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영업을 시작해 세상에 나왔었다. 석달간 공사를 했다고 하니 그 해 가을 그곳은 망치 소리에 톱질 소리에 요란했을 것이다. 원하든 원찮든 오래된 도시 충주에 가장 최신식의 건물로 시작한 녀석은 이제 80년 세월을 조금 넘기며 그 자리에 상징처럼 버티고 있다. 터줏대감 비슷한 착각을 하며 또다른 가을을 맞는 녀석은 무채색이다.

역사도시 충주는 생각보다 일찍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1869년 충주목사 조병로에 의해 읍성이 고쳐지며 새롭게 정비되었다. 그러나 1896년 을미의병 전쟁에 4대문루가 폭삭 주저앉고 다시 수리하지 못한 채 세기가 바뀌었다. 1907년에는 공립보통학교 신축 공사에 북벽 성첩을 헐어 쓰기 시작했고, 이후 1912년에 계획된 '충주시구개정(忠州市區改定)' 사업에 의해 현재의 성내동이 만들어졌다. 웅장했을 충주읍성이 1913년부터 3년 동안 부숴진 후 그 흔적조차 지워졌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식민도시로 변색되어 본정통(本町通)으로 불리며 중심상권이 만들어졌다. 그 상징기관인 은행이 바로 1933년에 새로 지어진 식산은행 충주지점이었다.

생각해보면, 오욕의 역사요 치욕의 상징이다. 그런 과거의 흔적이 지금 건재해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 건물이 가지는 성격과 의미도 따져보아야 한다. 등록문화재 지정이 건물 외형의 보존에 우선한 것이라면, 그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지역의 공론을 통해 의미있는 방향으로 찾아가야 한다. 미술관이라는 것을 전제할 경우, 그 공간 자체를 변형·변경할 수 없고 있는 그대로 손질해서 써야 하는 상황인데,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건이다. 그리고 인근에 관아갤러리, 문화회관 전시실이 있고, 또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구 충주우체국 건물을 매입하면 그곳에도 전시공간이 만들어진다. 나아가 충주교육청이 가을 이사를 마치면 그 공간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덧보태는 일이 미술관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성과 중심의 전시행정이 된다.

역사도시 충주의 중심·도심 공간에서는 그러한 역사를 느끼고 이해할만한 체계적인 흔적이 부족하다. 그 중심공간이 과거 성벽이 에둘러 있던 읍성 공간이다. 읍성복원에 대한 용역을 따로 발주해 수행하는 과정에 있고,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공간 자체에 손을 댄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공원 공간으로 남아있는 관아는 몇 그루 나무가 지키고 있다. 그 공간의 역사적인 변화를 보았을 그 나무는 또 한 가을을 맞고 있다. 저기 산꼭대기부터 내려치는 단풍을 맞으며 물들어가는 가을이 우울한 무채색 단풍이 아니길 소망해본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