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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다시 가을입니다. 한낮의 더위로 여름의 잔영이 남아 있다 해도 대기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가을입니다. 계절은 물처럼 순환하여 가을의 중심에 들어서 있죠.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어김없이 오르막 내리막길을 만나게 됩니다. 올라간 만큼 내려오고, 내려 간 만큼 반드시 올라갑니다. 언제 올라가고 내려오느냐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장충단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노래 한 줄 어디선가 흘러나옵니다. 박인희의 노래 '세월이 가면'입니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 가사가 주는 절묘한 경계에 가만히 걸음을 멈춥니다. 사랑이 가면 그 자리에 무언가가 남겠죠. 그 음률에 따라 옛 기억들이 떠올랐으니까요. 사랑이 진 자리에 남은 아련한 그리움들이 까닭 없이 몰려옵니다. 감정에도 균형이 있기 때문일까요. 비우면 무언가 채워지는 순리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봅니다. 서늘해진 바람결에 판화가 이철수의 시(詩) 한 줄이 바람에 실려 옵니다.

'꽃 보내고 보니, 놓고 가신 작은 선물'

작은 선물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그 선물은 향기로운 열매지요. 꽃 진 자리에 열매 맺힘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건만 시인의 눈을 통해 보니 유달리 아름답습니다. 자연의 평범한 일상을 긍정의 시선으로 보니 풍경이 달라진 거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에서 사과 한 상자를 맛있게 먹는 법이 나옵니다. 30개의 사과를 어떤 사람은 제일 좋은 사과부터 먹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은 마지막 한 개의 사과를 먹을 때까지 제일 좋은 사과만 골라 먹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30개의 사과 중 제일 맛없어 보이고 상처 난 사과를 선택합니다. 좋은 것을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둔 겁니다. 그 다음도 마찬가지죠. 결국 마지막 사과를 먹을 때까지 나쁜 사과를 골라 먹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 난 하루도 있을 것이고 흠 없이 건강하고 맛있는 시절도 존재할 것입니다. 여기에 분명 시선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풍경이 우리 앞에 매일 펼쳐지지만, 선택은 우리의 몫이죠.

<논어> 안연(·淵)편에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란 문장이 등장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를 살리고 싶어 한다는 의미죠. 반대로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는 그가 죽기를 바란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아요.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로인해 살리고 죽이는 두 가지 마음이 우리의 내면에 찰랑거리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죠. 하여, 공자는 제자 자장에게 그 경계의 마음을 미혹(迷惑)이라고 답합니다. 미혹을 다시 시선(視線)으로 바꾸면 답은 분명해지죠. 종이 한 장 차이, 즉 마음의 변화입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 상우는'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존재라면 사랑은 시선이죠. 긍정의 시선에서 부정의 시선으로 옮겨간 겁니다. 씌워졌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애초의 존재가 드러났을 뿐입니다.

사계절 중 유독 가을은 사람의 감정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가을은 오행 중 금(金)의 기운이 강한 계절이죠. 오행의 이치로 풀어보면, 금(金)은 수(水)를 생성합니다. 그러니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지만, 두꺼운 껍질 안 내면으로는 감성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가을을 타는 겁니다.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 존재하는데 변하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죠. 금(金)의 기운이 충만한 가을은 안으로 강하게 다지는 의지와 절제, 단단함을 상징합니다. 나무는 단단한 껍질을 지녀야 따뜻한 몸속의 수액을 끌어낼 수 있죠. 스스로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이제 날씨는 점차 차가워지고 숲의 나무들은 모든 잎들을 떨구어 나목이 될 것입니다. 나목이 드러내는 생명의 골계미가 고스란히 드러나겠지요. 일체의 수식을 걷어내고 생의 뼈대만을 세우고 있는 나무를 보며, 우리는 고요한 성찰의 시간으로 내면을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비우고, 채워지는 순환의 섭리로 점차 깊어질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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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