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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귀국 10년 사할린동포…아직도 고단한 한국생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탄광 등 중도농
오송 임대아파트 정착 후 현재 65명 남아
고령·경제적 어려움 등 사회와 단절
오송복지관 "사회적 관심 필요"

  • 웹출고시간2017.08.13 18:55:59
  • 최종수정2017.08.13 18:55:59

2016년 6월 11일 오송고등학교와 사할린 한인영주귀국주민들이 청원오송 휴먼시아 1단지 내 경로당 주변에서 사할린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글=조성현기자·사진제공=오송종합사회복지관
[충북일보] 광복 72주년을 맞이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새겨진 상처를 간직한 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령으로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사할린 영주귀국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탄광과 벌목장, 군수시설 등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1989년 한국과 일본의 적십자사가 함께 실시한 일시방문 및 영주귀국사업을 통해 사할린 교포들은 광복 47년 만에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992년 92명의 사할린 영주귀국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천여 명이 넘는 사할린 교포들이 귀국했고 지난 6월 말 기준 2천 800여 명이 전국 24개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167명(청주 오송 65명, 제천 102명)은 충북에서 살고 있다.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할린 영주귀국인들은 2008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에 한평생을 살았던 터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혹독한 이산의 아픔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영주귀국 시 직계비속의 가족은 동반할 수 없어 자녀들과 생이별을 겪었다.

오송읍에 정착한 사할린 영주귀국인들은 햇수로 10년째 접어들었지만 이들의 삶은 서툰 한국말과 고령 등의 이유로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이에 일부는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언어문제,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갔다.

현재 남아있는 65명 중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이거나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에 이주해 계속 거주했던 1세대는 29명만이 남아았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움은 사무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광복절은 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지난 5월 26일 오송 내에 거주하고 있는 사할린 힌연영주귀국주민 29명이 경상북도 경주시의 문화유적지를 방문하고 있다.

ⓒ 글=조성현기자·사진제공=오송종합사회복지관
사할린에는 추석 문화가 없어 그들은 일 년에 하루 광복절을 맞이해 두고 온 가족들을 보기 위해 8월 초에 러시아로 갔다가 10월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번 광복절에는 오송에서 50명의 사할린 교포들이 러시아로 떠났다.

남은 15명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비행기 값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다.

정부에서 월 49만 원(1명 기준) 받는 기초생활수급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보니 여가활동이나 사회적 활동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적십자사의 도움으로 항공료를 지원받거나 지역 복지관, 대학에서 사회통합사업으로 운영하는 사할린 전통음식나누기와 문화복지사업 등을 통한 인식개선 활동이 전부다.

본보 취재진은 사할린 교포들과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건강상 문제나 미숙한 언어 소통으로 오송종합사회복지사를 통해 이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손지협 오송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는 노인들 사이에서 미숙한 한국말과 낯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러시아인'이라는 차별을 겪기도 했다"며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역사이기도 한 사할린 교포들이 하루라도 빨리 사회적 관심을 받아 여생을 가족들 품에서 외롭지 않게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조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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