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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7.19 14:07:33
  • 최종수정2017.07.19 14:07:3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괴산군 증평읍 율리의 부점촌과 청주시 미원면 화원리의 삼흥을 잇는 방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지금은 임도가 잘 닦여 있고 원래의 고갯길은 아니지만 포장도로가 생겨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지만 원래는 율치(栗峙, 해발 360m)라고 부르는 '밤고개'였다. 이곳 밤고개 밑에는 밤티라는 마을이 있는데 인조반정 때의 공신인 김치의 후손들이 정착하면서 이룬 마을이라고 한다. 김치의 아들인 백곡 김득신 문학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뒷산인 좌구산에 휴양림이 생기고 천문대도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음성군 감곡면 단평리의 뱅고개는 '밤고개, 율현(栗峴)'이라고도 하며, 음성군 삼성면 용대리의 방개울은 한자로 '방가동(方佳洞), 율리(栗里)'로 표기한다. 단양군 단성면 외중방리의 밤실,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의 방고개, 괴산군 연풍면 행촌리의 밤밭도 밤나무밭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단양군 영춘면 율곡리는 본래 영춘군 가야면의 지역으로서 왕계산 및 골짜기에 밤나무가 많아 밤실 또는 율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외촌, 이곡, 도화동을 병합하여 율곡리라 해서 단양군 어상천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와같이 지명에는 '밤'이 쓰인 곳이 많이 있는데 밤나무가 있다는 이유로 '밤골, 밤실, 밤고개'라고 지명을 정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중국의 도연명이 자연으로 돌아가 거처한 마을이 '율리(栗里)'인데 이때 율리(栗里)는 밤나무(栗)의 의미를 나타내기 보다는 질서와 예의가 지켜지는 '율(律)'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명에서의 '밤'은 원래는 다른 의미의 말이 음의 유사함으로 유추 해석하여 변이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중국의 도연명이 거처하는 이상향을 '율리(栗里)'라고 한 것과 결부시켜 내가 사는 마을을 이상향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에 쓰인 '밤(栗)'이 '밤(栗)'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어원에서 비롯된 말이라 추정하는 근거는 지명에서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율리(栗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전해오는 이름이 '배미, 배미들'이었으며,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는 내수천 가에 큰 배미가 있으므로 대배미, 대야미(大夜味), 대율(大栗)이라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밤'의 어원은 '배미'인 것이다. 배미란 구분된 논을 세는 단위로 쓰이는 말인데 수 관형사 뒤에서 의존적 용법으로 쓰여, 다른 논과 구분되어 있는 논의 한 구역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한 배미, 두 배미, 세 배미' 와 같이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큰 배미, 작은 배미, 윗 배미, 아랫 배미, 높은 배미'처럼 논의 모양이나 위치를 나타내는 형용사가 수식어로 앞에 붙어 쓰이기도 하였다.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라는 지명에서 '큰 배미'라 불리던 이름을 '대야미(大夜味), 대율(大栗)'로 표기한 것은 '배미'의 음만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의 뱀골(白田)은 뱀처럼 길게 생긴 골짜기라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지지만 한자로 '백(白)'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뱀(蛇)'과는 관련이 없고 '배미골'이 어원이며, 충주시 소태면 구룡리의 뱅골,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의 뱅골 등에서 뱀골이 '뱅골'로 변이되어 의미를 잃은 채 오랫동안 불리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임억준의 장편소설에『서근배미 사람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유소년의 나이로 한국전쟁을 체험한 저자가 전쟁의 실상을 묘사하고 있는데 제목에 쓰인 '서근 배미'가 토속적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에 '썩은 배미'라는 작은 들판이 있는데 의미가 별로 좋지 않아서 이곳에 새로 생겨난 마을의 주민들은 이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도에는 '작은 배미'라 표기되어 있지만 이 이름도 좋은 이미지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결국 '참솔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을 새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 제목을 보면서 '아! 썩은 배미가 아니라 서근 배미였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서근 배미'라는 지명이 전국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작은 중량을 의미하는 '서근'이라는 말이 '배미' 앞에 붙어서 '작은 논 배미'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쓰여 왔음을 말해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이며 이곳의 지명이 '썩은 배미, 작은 배미'로 불리게 된 이유가 속 시원히 밝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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